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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문학과 환상 - <매트릭스>

pencilk 2004. 7. 5. 01:33
나는 오늘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레포트를 쓰고 배고 고프면 밥을 먹는다. 이 모든 나의 의지로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면?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세상이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이 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환상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는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매트릭스에서 말하는 환상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시뮬라시옹’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현실이 없고 시뮬라시옹만이 남는다.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실재를 모방해 만들어낸 가상의 기호, 이미지, 언어, 이데올로기 등이 오히려 현실 자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2199년 무렵의 진짜 현실을 네오에게 보여주면서 모피어스는 지도가 땅보다 먼저 존재하고 지도가 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현실이 기호를 만들어냈지만 언젠가부터는 기호가 현실을 좌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기호 속에 갇혀 그 기호가 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매트릭스다.

폐허가 된 진짜 현실, 즉 ‘현실의 사막’을 보고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세계가 허구임을 깨달았을 때 네오는 진실의 약을 선택한다. 매트릭스를 거부하고 시온에 모인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지라도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이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자신이 먹는 스테이크의 맛이 진짜가 아니라 매트릭스가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일지라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살고 싶다고, 시온의 세계를 깨끗이 잊어버리게 해달라고 말한다. 매트릭스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사이퍼처럼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것이 현실이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상이고 환상이라 말하고 있는 매트릭스의 공간은 사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들의 뒤틀린 현실의 모습이다. 엄청난 진보와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스스로 얼마나 기계화, 노예화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 달려가고만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즉 네오가 해방시키고자 하는 매트릭스의 세계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는 가상이고 환상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매순간 이성과 감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성에 의한 선택 역시 결국은 자신의 결정이므로 주체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후에는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고, 나이가 차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것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주관적이어야 할 감정마저도 사실은 우리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틀일 뿐이다. 그야말로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라는 틀에 묶여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기호와 이데올로기에 조종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라 믿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기계처럼 노예화되어 살고 있는 인간들과 그것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매트릭스라는 환상의 공간을 빌려왔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그것은 허상이고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이제 그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