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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GUE/France

Paris -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pencilk 2013. 4. 1. 10:16

마지막 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추울 때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일까. 이번처럼 내내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 떠나기 전에 체크했던 일기예보와 달리 최고기온이 10도를 넘긴 날이 없었고, 혹시 몰라 가져왔던 치마와 레깅스, 버버리 등 봄옷들은 단 한번도 입지 못한 채, 번갈아 입으려고 가져온 겨울 옷들을 매일매일 두 겹 세 겹씩 껴입고 나가서도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덕분에 감기에 된통 걸렸고, 처음으로 챙겨왔던 종합감기약마저 이틀만에 다 먹어버려 또한 처음으로 여행 중에 한인슈퍼를 굳이 찾아가 컵라면을 잔뜩 사다놓고 며칠 연속으로 저녁에 라면을 먹었다. 감기약이 없으니 뜨거운 국물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아, 그리고 꿀물 홍삼도. 아프니 한인슈퍼의 한국 음식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이번 여행, 많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서,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서 괴로울 줄 알았는데, 지금 나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여행 중에 누군가를 잃었고, 그를 생각하며 노트르담에서 기도하다가, 버스 안에서, 호텔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흐르는 센 강을 쳐다보면서, 그 많은 다리들을 건너면서, 달리는 기차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 그에 대해 생각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했으며, 또한 많이 외로웠다. 이런 때에 낯선 곳에 혼자라는 게 조금 힘들기도 했다.

내게 여행은 언제나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 속 이방인으로 최소한의 말만을 하며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니는, 일상으로부터, 특히 사람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참으로 오랜만의, 긴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 혼자였던 여행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는 한국에 돌아가도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출퇴근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일상, 그 소소함의 행복을 이번 여행 내내 많이 생각하다 간다.
돌아가면 사람들을 만나야지. 그리고 삼겹살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