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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Revisited 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10년 12월 어떤 폭우나 폭설이 쏟아져도 아침 해가 뜨면 어김없이 향하던 회사, 혹은 매일 저녁 퇴근 후면 당연하다는 듯 돌아오곤 하던 집. 그 익숙하고도 지겨운 장소들을 벗어나 1년에 단 며칠 낯선 길 위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의 시간에는 '길 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 보통 휴가를 떠나게 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1년의 절반이 흐른 시점에서 도래한다는 면에서도 '길 위의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연수의 『7번 국도 Revisited』는 두 주인공이 '부산에서 시작해 포항~강릉~속초 너머로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닿을 듯 이어지는 도로'인 '7번 국도'를 따라 자전거로 여행하며 겪는 길 안팎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사실 ..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박정석 저 시공사 | 2011년 05월 스무 살 때는 몰랐던 여행의 의미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집으로든 회사로든 내 이름 앞으로 배달되는 모든 물건은 예고된 것들 투성이였다. 내 손으로 직접 주문한 물건들, 어제 엄마가 보냈다던 밑반찬, 그리고 때가 되면 매달 빼먹지도 않고 속속 도착하는 각종 고지서들. 예상 가능한 그 수많은 배달물들 사이에서 이 책은 예상치 못한 친구의 소포라는 형태로 내 손에 쥐어졌다. "니가 읽으면 참 공감할 문장들" 이라는 메모와 함께. 스무 살 때는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남긴 메모처럼, 책은 표지에 적힌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미 섣부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는 말하..
보이지 않는폴 오스터 저/이종인 역 열린책들 | 2011년 01월 기억의 틈새,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진실 혹은 거짓, 그리고 이야기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 지극히 짧은 세 문장의 가사에는 사랑을 할 때도, 또 이별을 하는 순간에도 끝내 각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대는 내가 아니'기에, 함께 했던 시간들과 사랑했던 추억들마저 서로의 기억 속에 다르게 기록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다. 다만 그 시간 안에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숨쉴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기억은 왜곡된다. 하지만 그것이 왜곡된 기억이라 믿는 이는 없다.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것..
파리를 생각한다정수복 저 문학과지성사 | 2009년 09월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기억의 도시, 파리를 생각한다 파리를 생각한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스물한 살의 첫 해외 배낭여행,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들이 득실거리던 여행사 패키지 일정, 그다지 마음이 맞지 않았던 일행들, 온몸을 축축 늘어지게 하던 뜨거운 7월의 햇빛. 그 서툴렀던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낯설고도 익숙했던 도시, 파리. 모든 것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만나는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이듯, 여행지 역시 계절에 따라, 혹은 그 여행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곳을 걷고 있어도 각자가 기억하는 느낌과 잔상들은 다를 수밖에..
세계의 끝 여자친구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09년 09월 붕괴되어버린 한 '세계의 끝'에서 내가 만난 최고의 위안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한다고 착각하고, 때로는 사랑에 빠진다.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두 사람 간의 오해는 결국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놓는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너에게 하나하나 다 설명하지 않았을 경우의 의사소통의 단절. 또는 설명을 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는 상호 공감의 단절. 사람이 사람을 뒤흔든다. 사람은 결국 각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도 흔들리고 비틀거린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는 거라며, 서로가 서로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서로의 세계를 아낌없이 부순다. 그렇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저 한겨레출판 | 2003년 08월 어린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나는 야구의 룰도 제대로 모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었다. 롯데는 삼미 슈퍼스타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90년대의 하위권을 주름잡은(?)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그랬기에 여느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야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조차 92년도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할 정도로, 롯데가 우승하던 해의 부산 시민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광했다. 그들은 '롯데가 우승한 해'와 '눈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산에 눈이 쌓인 해'를 "내가 몇 학년 때였지"라고 기억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아마추어를 사랑한 적이 있는 모든 이들..
좋은 여행이우일 저 시공사 | 2009년 06월내가 원했던 여행은 낯선 곳에서 일상처럼 음악을 듣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또 책을 읽는 그런 사소한 것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 중에 듣는 음악들은, 그것이 이전에 수백 번이고 들었던 익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스며든 여행의 기억들로 인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래서 내게는 정동진의 일출을, 영국의 한적한 공원을, 파리 퐁피두센터의 달콤한 브라우니를 떠오르게 하는 음악들이 있다. 이런 음악들은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음악이 된다. 『좋은 여행』은 이러한 여행의 작은 기쁨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홋카이도를 혼자 여행하는 내내 직접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면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