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ilk

그 여자 2 본문

ME/그 여자

그 여자 2

pencilk 2013. 3. 4. 01:35

어째서 '나는'이 아닌 '그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더 솔직할 수 있는 걸까. 


6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겨우겨우 퇴사하면서 그 여자는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초등학교 시절 그 여자는 툭 하면 눈물을 쏟아내는 울보였다. 하고 싶은 말을 똑부러지게 하지 못하는 어리숙함으로 인해 그 여자는 조금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동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주도하는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격이 완전히 바뀐 그 여자는 반 분위기를 주도하며 거친 말을 내뱉는 왈가닥 소녀가 되었지만, 고3 때 겪은 어떤 일로 인해 깊이 상처 받았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급격히 어두워졌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면서 그 여자는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그 누구도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삼십대가 되어버린 그 여자에게 그 시간들은 이제 '어렸을 때의 방황'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서야 그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을 똑부러지게 하지 못하는 울보였던 초등학교 시절의 자신이 아직도 제 안에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요즘 들어 그 여자가 자주 떠올리곤 했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진실인지도 몰랐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변하되, 그 변해온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스스로가 어느 하나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의 경계선에서, 그 여자의 안에는 또 하나의 그 여자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 이 시간들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때.





'ME > 그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실은  (0) 2019.09.06
상처  (0) 2019.09.06
그 여자  (0) 201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