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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순간

pencilk 2008. 2. 3. 21:44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 시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을 정도로 좋아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거나 울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이 흘러도 닦지조차 않는 내가 품에 안겨서 엉엉 울 수 있었던 친구들이었고, 크리스마스날 어머니의 외출 금지령으로 집에서 나갈 수 없었던 나의 방 창문 밑에 일렬로 서서 컨츄리꼬꼬의 '크리스마스'를 부르며 춤을 춰 나를 웃다 쓰러지게 만들었던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만들었던 추억들이,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친구들이 영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이 친구들이 내 생애 최고의 친구들 중 3명이 될 것이고, 이 시간들이 내 생애 최고의 추억들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솔직히 지금 그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한다거나 만나지는 않는다. 서로의 길이 많이 달라졌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씩 연락하더라도, 너무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누구보다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 속에 서로가 깊이 남아 있을 거라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때의 우리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서 놀고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영원한 친구'라는 명확한 형태로 굳이 남지 않았어도,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 했고 내 평생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을 정도로 열심히 놀았던,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존재하기에, 그 기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가끔씩 떠올리며 웃음 짓게 하고, 또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들 역시 그러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 초중반 얄밉기 그지 없던,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안승필이라는 인물이, 계속되던 연장전 사이 휴식 시간에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그 순간, 선수들의 표정은 비장해 보이기도 하고, 또 지쳐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 앞에서, "그런데 나, 포기 안 할 거거든? 그러니까 당신도 포기하지마."라고 말했던 미숙.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겪어야 했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단 몇 초간의 시간 속에서 한순간, 한없이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그것을 그들의 실패라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이 과연 그 경기의 순간을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생각할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금메달을 땄던 다른 경기의 순간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 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있어 그 경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사실 나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든가 핸드볼 경기의 박진감이라든가 그런 것보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뛰어야 하는, 살기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했었다. 국가대표, 금메달, 그런 것보다는 그저 살기 위해서 뛰어야 했던 그녀의 삶이 나를 계속 울게 했다. 스포츠 영화가 뻔하지 뭐 라든가, 경기 봐서 결말 다 아는데 뭐,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쎄. 나는 단지, 끝까지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끝내 세상은 원하는 민큼, 노력한 만큼 모두 돌려주지는 않는다는 그 간단한 진리 앞에서, 그래도 그 순간을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책방이십사> - '책방까페'
원문 : http://blog.yes24.com/document/84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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