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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HINKING/책, 글 (129)
pencilk
흔들리며 피는 꽃 국내도서 저자 : 도종환 출판 : 문학동네 2012.08.20 상세보기 꽃잎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꽃잎 인연 몸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 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비행운 국내도서 저자 : 김애란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07.16 상세보기 1. '그러지 말자' 수없이 다짐했건만, 서윤은 경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자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2.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뭐라도 되겠지 국내도서 저자 : 김중혁 출판 : 마음산책 2011.10.05 상세보기 1. 책장의 책 사이에는 내 일기장도 몇 권 꽂혀 있다. 일기의 내용은 정말 가관이다. 스무 살 무렵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오늘은 친구 아무개와 당구를 쳤다. 내가 이겼다. 저녁에는 친구 아무개와 함께 을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새벽 1시쯤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기는 젊은 시절의 고뇌와 허무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글에서 감정을 없애고 오로지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 젊은이가 겪게 된 마음의 고통을 ‘드라이하게’ 드러내고 있다, 라고 누군가 과대포장해준다면 모를까 대충 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놀고 있는 젊은이의 삶일 뿐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한심한 일..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국내도서 저자 :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 / 송은주역 출판 : 민음사 2009.11.20 상세보기 1. 전화에 얽힌 일을 할머니에게 말할 수 없었으니, 할머니를 비롯한 그 누구보다도 더 내가 아빠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비밀은 내 속에 뻥 뚫려 모든 행복한 일들을 빨아들이는 구멍이었다. 2.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區)와 도..
고흐의 편지 1 국내도서 저자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 정진국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08.19 상세보기 1. 이 여행으로 녹초가 되어, 발은 마비되고 침울한 심정으로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어. 흥미로운 것을 보기도 했고 끔찍한 고생 덕에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으니까. 2. 그 장면이 내게 이야기했고 내가 빠르게 받아 적은 무언가를 볼 수 있었지. 그런 속기(速記)에 풀어낼 수 없는 말과 실수와 결함이 담겨 있겠지만, 아무튼 나무와 해변 그리고 인물이 내게 말한 것이 남아 있는 듯했어. 배우고 익힌 것이니, 어떤 이론에서 나온 관용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지. 3. 텅 빈 화폭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만 말고 무엇이든 그려 넣어야 해. 그..
대책 없이 해피엔딩 국내도서 저자 : 김연수,김중혁 출판 : 씨네21 2010.06.30 상세보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는 나름의 공통점도, 또 저마다의 차이점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내 취향의 문제와는 별개로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과연) 분류가 가능한 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작가가 쓴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 대한 부분이다. 말하자면 소설은 잘 쓰지만 에세이는 제발 넣어둬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작가(예를 들어 채소의 기분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두 개의 달이 뜨는 1Q84년ㅡ혹은 1985년ㅡ에 대한 이야기나 끝까지 해보라며 멱살 잡고 싶은 그 분)와 에세이는 최고지만 소설은 조금, 음, 하게 만드는 작가(예를 들어 밥벌이가 지겨워 자전거 타고 떠난 여행에서 쏟아낸 문장들로 파릇파릇하던 20대 초..
Norwegian Wood Haruki Murakami / Jay Rubin VINTAGE BOOKS 1. Even so, my memory has grown increasingly dim, and I have already forgotten any number of things. Writing from memory like this, I often feel a pang of dread. What if I've forgotten the most important thing? What if somewhere inside me there is a dark limbo where all the truly important memories are heaped and slowly turning into mud? 2..
2012. 8. 13. 지지 않는다는 말 국내도서 저자 : 김연수 출판 : 도서출판마음의숲 2012.07.07 상세보기 "저는 무대장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그 선배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선배가 내게 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냐? 두고 봐라." 두고 본 결과, 그 선배의 말은 맞았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래스카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로라는 딸아이가 하는 닌텐도의 게임 '동물의 숲'에서 간신히 보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은 대학교 시절이 끝나면서 '인생이라는 건 뭐 그 모양'이라는 걸 깨달았다. 두고 볼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