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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HINKING/책, 글 (129)
pencilk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열림원 2009.12.20 상세보기 1. "나는 내 삶이 세월과 함께 단계적으로 나아져왔다고 생각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 그전보다 나았고, 이혼한 것이 결혼생활보다 나았고, 그 뒤로 그 시인과의 관계, 그 관계의 청산까지, 나는 조금씩 더 강해져왔어. 비록 나는 지금 이렇게 늙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내가 매우 강하다고 느껴." 에란디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 "왜냐면, 거짓말은 사람을 약하게 하니까. 마치 충치처럼 조금씩 조금씩 썩어가게 하니까. 세월이 흘러도 사람이 강해지지 않는다면 바로 그런 경우겠지. 하지만 난 진실을 택했어." 2.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 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
행복의 충격 국내도서 저자 : 김화영 출판 : 문학동네 2012.07.15 상세보기 1. 이리하여 나는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여권을 소지하고 비행기에 실려 지구를 돌아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온 격이 되었다. 그러나 프로방스가 나의 고향처럼 느껴지기 위해서는 수년이 걸렸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거나, 말없이 씩 웃기만 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친구들의 그 소우주가 부재한다는 이방인 특유의 상황만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막연히 나의 육체, 나의 감각은 이 고장의 나무랄 데 없는 풍경과 기후에 저항을 느끼는 것이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쉬 안정되지 않았다. 사철 밝은 햇빛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 위에, 풀밭에, 거리..
노랑무늬영원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10.23 상세보기 1. 모든 상황에는 조건이 있다. 우리의 평화는 내 건강을 전제한 것이었다. 조건이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진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만일 내가 그 사고로 죽었다면 우리의 다정함이 더럽혀지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지겹도록 아팠고, 내가 지겨운 만큼 그도 지겨워했다. 나를 지겨워하는 그가 나도 지겨웠다. 서로의 얼굴이 지겨워서 종종, 암묵적으로 서로의 눈길을 피했다. 그 과정에는 어떤 부도덕도, 죄악도 없었다.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며, 그도 그때의 그가 아닌 것뿐이었다. 모든 것이 지나가버렸을 따름이었다. 외딴섬에 단둘이 표류된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서히 서로를 질식시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국내도서 저자 : 김연수 출판 : (주)자음과모음 2012.08.27 상세보기 1.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불행은 불량한 십 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2.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
당신에게, 여행 국내도서 저자 : 최갑수 출판 : 꿈의지도 2012.07.08 상세보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국내도서 저자 : 이병률 출판 : 달 2012.07.01 상세보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느낌의 여행 에세이 둘. 『당신에게, 여행』 vs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결과는 『당신에게, 여행』의 완승. 제목 선정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쪽의 승이겠으나ㅡ그래서 판매량도 훨씬 더 높은 것 같지만ㅡ, 내용 면에서나 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당신에게, 여행』의 완승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의 경우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기 위한 에세이가 아니라는 면을 감안하더라도, 책 대부분을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연애 에피소드에 할애하고 있으면서 (당연히 전후사정 설명..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국내도서 저자 : 백영옥 출판 : 아르테(arte) 2017.07.26 상세보기 이 책의 끝을 5~60 페이지가 남겨둔 상태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 정확히는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읽다 보면 서서히 나오겠지 했던 것들이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는 지점에서 '아직도 안 나오네'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그때 XX은 왜 그런 거야?' '그래서 OO는 어떻게 된 거야?' '이대로 끝이야?' 와 같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5~60페이지가 남아 있던 시점과 끝까지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많이 다르긴 하다...
태연한 인생 국내도서 저자 : 은희경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2.06.11 상세보기 언제부터인가 까페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광장에 모이지도 밀실에 숨어들지도 않았다. 남의 집을 방문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는 쾌적했으며 먹고 마실 것이 준비돼 있었고 참견하는 사람도 없었다. 집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들끼리 용건 없이 만나 가벼운 개인사를 공유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데이트하는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각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의 앱을 뒤적였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애인을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혼자 있다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공..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국내도서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우달임역 출판 : 톨 2012.05.09 상세보기 1. 사회적 관계의 모순 중 하나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훨씬 더 잘해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말만 많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직장 동료들은 하루 종일 성심성의껏 대하다가, 저녁에 집에 와선 잔소리를 평소보다 조금 심하게 했다거나 열쇠꾸러미 챙기는 걸 깜빡했다는 이유로 솜씨 좋고 상냥한 아내를 매몰차게 면박 주는 남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마도 그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매우 진지한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고, 어쩌면 이런 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작정하고 싸우려면 먼저 그에게 아주 많이 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