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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pencilk 2003. 12. 18. 19:02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이에 대한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아,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라고 힘겹게 결론을 내리고 나면, 얼마 안 있어 다시 그 생각이 흔들린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한동안 나는 내가 대학 1, 2학년 때 갖지 못했던 '여유'라는 놈을 만나서, 정말 연애라도 하듯 그 매력 속에 풍덩 빠졌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 실로 그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고 그렇게 살면 세상은 참 살기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겉으로만 여유있는 척 하는 것과 실제로 정말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은 다르니까. 나는 요즘 예전에 비해 많이 여유로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ㅡ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ㅡ, 그래도 가끔씩 그 여유에 내 스스로가 치여서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나의 진로에 있어서도.


여유를 가진다는 것과 아예 생각지 않고 회피하는 것은 다르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그저 생각하지 않고 도망치려 애썼고, 이제는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잘 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 그저 자기 주문이라 해도 상관 없다. self-fulfilling prophecy. 그 자기 주문이 진짜 나를 만들어가기도 하니까.



얼마전에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의 문제에 대해 내게 상담을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자꾸만 대화가 겉돈다는 점. 처음에는 그 애가 제대로 다 설명은 하지 않고 그냥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파편적으로 설명을 해서였고, 그 다음에는 그 애랑 내가 너무 다른 스타일ㅡ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ㅡ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특히 요즘들어 남자친구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니가 나를 참 모르는구나'라는 소리를 자주 하게 된다. 남자애들 중에는 특히 나를 너무나 모르고, 그러면서도 내가 참 편하다는 녀석들이 많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 어떤 면들이 남자애들을 편하게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런 녀석들 중에 나도 편하게 느끼는 녀석은 별로 없다는 점. 잘은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내 주위 사람들 중에는 나를 '함께 있으면 참 말이 많고 활발한 성격'으로 기억하는 사람과 '별로 말이 없고 붙임성도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대충 둘이 있을 때 나는 말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두 사람만 있을 때의 침묵을 잘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내가 떠든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과 있을 때는 더더욱.
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나, 내가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의 나는 정말 말이 없다. 동문회 모임에서 몇번이나 만나고 가까이에 앉은 적도 참 많아서 얼굴과 이름은 익히 알고 있는 오빠가 나를 붙잡고 그런 적이 있다. 보기는 참 자주 봤는데, 말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너는 선배가 옆에 있어도 '오빠', '선배' 하면서 먼저 말 건네는 스타일이 절대 아닌 것 같다고.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말이 많아진다. 그 때부터는 다시 '침묵을 견디기 힘든 두 사람'의 단계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는 둘이 있어도 내가 억지로 떠들지 않아도 되게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 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침묵이 흘러도 편한 사람이 진짜 편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침묵을 못 견뎌서 내가 계속 이야기하고, 그러고 나서 뭔가 허전해짐을 느끼는 내 성격도 그리 좋은 성격인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편하게 느끼는 데 비해 나는 별로 편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계속 이야기해서 스스로 지쳐버린다. 그리고 상대는 내가 원래 그런 성격인 줄 알고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조금은 우스운 모순.


재수시절 내가 사람들에게 절대 기대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윤선이가 그런 말을 했다. 그런 사람들 재수없다고. 왜 기대려 하지 않고 혼자서 세상 힘든 것 다 짊어진 것처럼 사냐고. 나는 그건 오버라고 얘기하며 웃었지만, ㅡ그리고 내가 정말 세상 힘든 것 다 짊어지고 사는, 윤선이가 말한 그런 성격이라는 것은 아니지만ㅡ 가슴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내가 기대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즉 언제나 사람들 탓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선이는 그게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내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에 동감하고, 윤선이가 옳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알고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졌지만)


잘 모르겠다.
어떤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고,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며,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
오늘도 고민하고, 오늘도 결론을 못 내리고 (또는 결론을 내리고도 다시 그 결론이 틀렸음을 깨닫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삶은 이런 거구나'라고 느낀다면
후에는 그것이 틀렸다고 깨닫거나 생각이 바뀐다 하더라도
지금 느끼는 이것이 바로 삶인 거겠지.
굳이 정답을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loveheart 
  03/12/18

후후, 어떤 삶도 실패한 것은 없다. 나의 지론이다. 으하하
너무 변명같긴 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게 나의 능력 아니겠냐. 으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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