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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WRITING/DEW 기사 (16)
pencilk
순천만 갈대밭 시간은 흐른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그렇게 쉼 없이 흐른다. 시간은 말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그 ‘흐름’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시간은 같이 걸어가자며 손 내밀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흘러갈 뿐이다. 그리고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 속에 포함된다. 저 길 끝에 과거의 기억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미래도 있다. 그렇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현재를 걷는다. 글 사진 정현경 기자 웹진 듀 (http://ewhadew.com) 2004년 2월호 기사
어느 날 저녁 사막에 내리는 눈을 목격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눈에 대한 단상은 백색의 이미지에서부터 차갑고 시린 이미지, 그리고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는 것까지 다양하다. 윤대녕이 눈을 소재로 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8년 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우연찮게 목격한 눈 내리는 풍경에서 비롯되었다. 모래와 눈이 가진 이질적인 두 이미지 사이로 들려오는 미지의 외침이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밤낮으로 눈이 퍼붓는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서 눈은 신비로운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일상이다. 일상을 눈과 함께 살아가는 일본의 니가타에서 그가 풀어놓는 '눈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눈의 여행을 떠나다 는 계약된 소설을 1년째 쓰지 못해 고민하던 소설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 메타 형식이다. ..
최근 한나라당이 전기사용료와 함께 징수하고 있는 TV시청료를 분리 징수토록 한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제출함에 따라 '수신료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수신료의 분리 징수는 원론적으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KBS측은 수신료를 전기료와 따로 내게 하면 다시 이전처럼 징수율이 현저하게 떨어져 재정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분리 징수는 옳지만 그보다 수신료 인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신료는 왜 내야 하나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방송의 공공성을 위해 공영방송제도를 두고 있다. 공영방송은 국가의 압력이나 상업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기관들만이 그 본연의 방송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제도다. 방송이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
'부고를 알리지 말고 장례식이 끝난 후에 즐겁게 돌아갔다고 전하라.' 지난 8월 25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오덕씨의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어떤 조화와 조문도 받지 말라는 고인의 유언대로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들은 빈소 밖에 놓였고, 조문객들은 빈소 참배도 못하고 밖에서 서성여야 했다. 살아온 내내 그러했듯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청빈을 실천하려 한 고인의 모습이었다. 1925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이오덕씨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당시의 농촌 현실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더 이상 진학을 할 수 없었고, 2년 간 농사를 짓다가 돈이 안 드는 2년제 농업학교에 들어갔다. 봄, 여름, 가을에는 밭 매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꾼다. 찌들릴 대로 찌들린 일상을 벗어던지고 싶어질 때면 증세는 더 해진다. 7월 1일, DEW 7월호 업데이트도 차기 디자이너 손기은 기자에게 떠맡긴 채 유럽으로 떠났다. 여행의 모토는 별 것 없었다. 그저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걷고 싶다' 정도가 다였다. 그 수많은 낯설음 속에서의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 다행히도 처음 도착한 런던은 기대했던 대로 낯설었다. TV에서나 보던 빨간 지붕의 집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펼쳐지고, 말로만 듣던 빅밴, 타워브릿지도 보인다. 사람들은 조금만 부딪혀도 "sorry."하고 사과하는 매너를 보이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신호등..
“평생의 저작 활동을 통해서 보면, 그는 도덕주의자라기 보다는 인류에 대한 책임감에 압도되어 있는 예술가였다.“ 알베르 카뮈에 대한 호치슨(Hutchin)의 평가다. 알베르 카뮈는 1957년 10월 17일 프랑스인으로서는 9번째, 최연소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 위원회는 그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그의 작품들이 ”인간 의식에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빛을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뮈의 작품들에 드러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허무주의와 그것의 극복 과정은 결국 그의 삶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가 있기까지 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작은 도시 몽도비(Mondovi)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마른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후 ..
도서관에서 빌린 85년도 중판 전혜린의 유고집 는 거쳐온 세월의 길이를 보여주듯 많이 낡고 손때가 잔뜩 묻어있었다. 여기저기에 그녀의 생각에 대한 공감, 또는 의문을 표한 글씨들이 적혀있다. 어떤 문장에는 줄이 몇 번씩 그어져 있고, 여백에는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 보인다. "이 문장에 공감한 누군가가 보라색 펜으로 줄을 그었다. 나와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한다." 그녀의 생각에 공감한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전혜린은 시인도, 소설가도, 그렇다고 평론가도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우리나라에 헤르만 해세를 비롯한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번역가 정도다. 번역이 아닌 자신의 글이라고는 사후에 출판된, 라는 하인리히의 뵐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산문집,..
미국의 유력 신문인 은 노암 촘스키(75)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로 묘사했다. 인문·예술분야 인용지수(AHCI)에 의하면 1980년부터 92년 사이 그는 각종 인문·예술분야에서 무려 4,000회나 인용되었다. 노암 촘스키는 플라톤, 셰익스피어, 프로이트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있는 학자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학사, 석사를 마친 그는 1955년 ‘변형’이란 개념을 도입해 ‘통사구조(Syntactic Structures)’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1961년에 같은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고, 현재 언어학 석좌교수로 있다. 저명한 소설가 노먼 메일러는 촘스키에 대해 “야위고 날카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