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cilk

나답게 본문

ME/Daily Life

나답게

pencilk 2005. 5. 15. 06:22

어제 하루종일 굉장히 우울했었다. 사실 이번에도 문제는 결국,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르지 정도로만 느끼고 있던 것에 대해 언어로 한 번 내뱉음으로써 사실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주된 이유였지만.


학교 컴퓨터실에서 친구 홈페이지에 주절주절 글을 쓰다가 문득, 원래 쓰려고 했던 말보다 더 길게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쓰는 도중에 깨달았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우울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요즘 너무 나답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 글을 다 써갈 때쯤엔 눈시울마저 잠깐 뜨거워져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유럽에 여행 가 있었을 때랑 같은 상황이다. 나와 안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고 피곤해하면서, 나와 잘 맞는 내 사람들이 너무나 그립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힘들어한 적이 있었다. 4월 한 달 동안은 너무 정신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사도 하고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주저리주저리 써놓은 글에 친구는 거기 맘에 안 들면 딴 데로 가라, 라고 간단명료한 답글을 달아놓았다. 그녀답다. 이미 한 번은 옮겼다. 기숙사.(웃음)


뭐 내 상황이 옮기고 싶다고 옮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사실 내가 우울했던 건 여기가 싫었다기보다 나답지 않는 요즘의 내 모습이 싫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테니까. 물론 일본 물가가 비싸기도 하고, 뭔가 지나치게 상냥한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점점 '저 사람 속으론 무슨 생각할까'라는 눈으로 보게 되고, 일본 사람들의 이중성에 좀 질리기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싫었던 건 나와 맞는 사람의 부재, 100명의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중에 내가 심심할 때, 또는 내가 힘들 때 연락해서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뭐 이딴 것들 때문에. 친구가 생기긴 했지만 과연 그들이 진짜 친구인 걸까,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괜히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땅을 파게 되니까.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제일 인정하기 싫어하는 단어긴 하지만 사실은 '외로워서'였다는 거. 그 한마디로 모든 건 명료하게 정리된다.
외로웠나보다. 그래서 나 답지 않게 처음보는 사람한테 말도 걸고, 오늘 처음 만나 겨우 몇 마디 해놓고서도 왠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먼저 연락처를 묻고, 묻고 나서 그런 내 자신에 낯설어하는 내가 있었다.
일본에 있는 1년 동안은 적극적으로 친구도 많이 사귀고 뭐든지 열심히 참가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왔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주위에 엄청나게 발 넓고 바쁜 녀석이 있어서 더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버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고, 많은 친구들보다 단 몇 명이라도 나와 정말 맞는 사람들을 원하는, 적당히 혼자 놀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사람들과 함께인 걸 좋아하는, 그게 나인데. 나답지 않게 너무 무리했었나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시시껄렁한 일본 드라마 한 편 보다가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졌던 나를 구원해 주는 대사를 만난다.

 


春香:私ね、もう無理はしないようにしようって。
         나 말야, 더 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했어.
差益:無理って?
         무리라니?
春香:例えば、私は幸せを待ってるタイプだったと思うの。
         예를 들면, 나는 행복을 기다리는 타입이었다고 생각해.
         でも、幸せを探しに行ったり、取りに行ったりする人もいて、
         하지만 행복을 찾으러 가거나, 얻으러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それがとてもうらやましかったのね。
         그게 참 부러웠었어.
差益: なるほど。で?
         과연. 그래서?
春香:だからやめたの。もう自分に似合わないことは。
         그래서 그만뒀어. 이제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건.
         自分じゃないことしていくと、全部がそうなって、
         자기가 아닌 걸 계속 하다 보면 전부 그렇게 돼버려서,
         いつか違う人みたくなっちゃいそうで。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아서.
差益:それは嫌なの?
         그건 싫어?
春香:だってそれじゃ生まれたから今までの自分がかわいそうだもん。でしょう?
         그러면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내 자신이 불쌍한걸. 그지?



差益:やっぱり君って…
         역시 너란 애는…
春香:古いって言いたい?(笑)でもそれが私なの。
         구식이라고 말하고 싶어? 그치만 그게 나인걸.



은근히 나는 굉장히 시시껄렁한 드라마들에서도 잘도 구원받곤 한다.
당연한 거고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면서도, 단지 외국에 나왔다는 이유로 잠시 잊고 있었던, 쯔요시가 언제나 외치던 바로 그 '自分らしく'. 나 답게. 그 한 마디면 모든 건 해결되는 것을. 드라마는 역시 좋은 거다. (<-이게 결론?;)


무리할 필요는 없다.
나답게.

 



 
   05/05/15
가 언제나 달고다니는 自分らしく라는 말 참 와닿아.
항상 핸드폰에 입력해놓고 가끔씩 머리속에 새긴다.ㅋㅋㅋ
나다운게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인간관계에 있어 나답지 못한건 나자신을 너무나도 괴롭게 만드는것 같아.
내자신이 안절부절 못하고, 무언가 해야할것 같고, 그러다보면 항상 지치고. 역시 나다운게 좋은거야! 세상이 편하잖아~ㅋㅋ
외국생활 지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해!

'ME > Dail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Casker, 그리고 roller coaster  (0) 2005.05.29
일본 오고 나서 처음으로 체하다;  (0) 2005.05.28
드디어 인터넷이!  (0) 2005.05.12
IT 강국 한국 -_-!!  (0) 2005.05.11
사람과 사람  (0) 200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