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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셋 본문
여행을 다녀오니 갑자기 들을 음악이 많아졌다.
새로 들은 앨범은 모두 셋이었는데, 세 앨범은 각자 다른 의미로 내 머리를 쳤다.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역시-라며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했다.
첫번째는 역시 MR.CHILDREN의 I ♥ U 앨범.
이 앨범은 여행의 마지막날이었던 9월 21일, 예상과는 달리 고베가 아닌 오사카에서 듣게 되었다. 힘겹게 오사카에서 겨우겨우 찾아낸 레코드 가게에서 앨범을 사서 카이유칸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처음 들었다. 하지만 역시 처음 들었을 때보다는 돌아오기 직전, 야간 버스를 기다리며 가사집에서 가사를 하나하나 보면서 보았을 때의 감동이 더 컸다. 이유는 역시 또 한 번 내 가슴을 친 그의 가사 때문.
역시 사쿠라이는 시인이다. 또는, 이 사람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이런 사람이라면 결코 인생에 있어서 크게 실수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런 사람이 이혼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째서? 라고 잠시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사랑도 잘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이 뱉어낸 창작물을 통해 그 사람을 단정하려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잠시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 나는 그렇게 실없이 비실거리며 감탄하고, 웃고, 가슴 벅차했다.
처음 보고서 가슴이 얼얼했던 가사들은 이런 구절들이었다. 僕らはきっと試されている どれくらいの強さで明日を信じていけるのかを… 多分そうだよ (우리들은 분명 시험당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강하게 내일을 믿을 수 있는가를... 아마도 그럴 거야.) 多くの事を求め過ぎて 出来るだけ側に居たくて そんなことしてる間に息が詰まる 大低人はこんな感じで大事なもんを失うんだろう (너무 많은 것들을 추구해서, 가능한한 옆에 있고 싶어서, 그러는 사이에 숨이 차올라. 대부분 사람은 이런 식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거겠지.)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앨범 디자인. 이건 나중에 thinking 게시판에 따로 올릴 거지만, 이번 앨범은 정말 사고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가사를 어떤 모양이 되게 늘어놓았는데, 특히 내가 감동했던 부분의 가사들은 여지없이 글씨 크기가 커서 소리없이 웃기도 했다.
두번째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좋아할 만한 가수가 나타났다며 기뻐했던 clazziquai의 2집. 잘은 몰라도 요즘 되게 잘 나가는 듯. 삼순이 ost도 그렇고, 영화 외출 주제곡도 만든 듯 하고. 여기저기서 clazziquai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내가 지금 한국에 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처음 딱 들었을 때의 느낌은, After Love 같은 분위기의 곡은 없네, 라는 것. 내가 After Love를 좀 많이 좋아하다 보니. 하지만 역시 들으면 들을 수록, 역시 clazziquai네 라고 생각했다. 좋다- 계속 그렇게 중얼거렸다. 길을 걸으면서 clazziquai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깊숙이서부터 좋다-라는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서 굉장히 행복해진다. 1집을 듣고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가수의 2집 음반이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을 때의 기분은 최고다. (러브홀릭이 2집에서 나를 좀 실망시켜서 안타까웠었는데, clazziquai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ㅜㅠ 삼순이 ost의 이별 못한 이별은 좋았지만.)
음악도 물론 좋고, 난 특히 이 두 사람의 보컬이 너무 맘에 든다. 각자의 이름도 모르지만; 남자 목소리도 여자의 목소리도, 그리고 둘이 같이 부를 때도 굉장히 좋다. 특히 남자 보컬에서 마음에 드는 목소리라고 생각한 건 참 오랜만인듯. 좋다- clazziquai, 오래오래 좋은 음악을 들려주세요~ 당신들의 음악으로 나는 오늘 또 한 번 살 맛이 난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문희준의 4집.(두둥) 그렇잖아도 여행하는 중간에 굉장히 오랜만에 생각이 났었다. 그러고 보니 희준이는 요즘 뭐하나? 하고. 이유는 바로 티비에서 외출의 광고를 보다가; 외출은 일본에서는 4월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광고는 엄청나게 해대고 있다; 그런데 캐스팅부터가 허진호스럽지 않아서 좀 언짢았던 기분이, 예고편을 보면서 내용 자체도 좀 아닌데 싶더니, 결국 티비로 광고를 보다가 더 기절했다. 광고에 bgm으로 쓰인 곡을 S가 불렀더라...(...) 차라리 신혜성 한 사람을 쓰던가, 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신혜성이 인기가 많아서 S의 곡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S가 뭐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허진호와 안 어울린다. 허진호와 손예진부터가 엣-이었지만, 허진호와 S라니. 그리고 clazziquai의 곡과 Loveholic의 곡이 함께 들어있는 삼순이 ost는 최고였지만, clazziuai와 S의 곡이 함께 들어있는 ost라니, 불협화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가? 아무리 지원이 필요했다고 해도, 일본에서는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허진호는 이번 영화로 기존의 팬은 다 잃을 것 같다. 아무튼 얘기가 엄청 새버리긴 했지만(;), S의 곡이라는 걸 알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희준이는 뭐하고 있나- 라고;
그리고 새 앨범을 냈다는 소식에, 솔직히 말해서 바로 달려가 들어보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MR.CHILDREN과 clazziquai라는, 더 듣고 싶은 새 음반들이 있었다는 것이겠고, 두번째는 역시 조금 두려웠기에.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앨범 평가란에 인간들이 써놓은 글들도 봤다. 보면서 그래도 시간이 꽤 흐르긴 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그렇게 몰지각하게 무조건적으로 욕하는 인간들은 꽤 줄었다. 또는 그랬던 인간들도 서서히 내가 왜 그렇게까지 난리쳤지? 라고 깨달은 듯한 코멘트들도 많았다. 이번 앨범을 끝으로 군대에 간다는 것이 꽤 큰 작용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군대 간다는 사실 하나에 너그러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참 특이하긴 하다. 아마도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테지.
음악 얘기를 하자면, 나는 문희준의 팬이었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뭐 정확하게는 지나치게 쏟아지는 비난들로 나 역시 그를 붙잡고 있는 게 버거워졌을 무렵이었겠지만) 조금씩 그를 놓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은 그의 음악은, 팬으로서도, 그리고 그에게 전혀 관심없는 한 사람으로서도 아닌, '그의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듣게 되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그의 음악에서 좋은 점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인정해버렸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rock의 r 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문희준의 팬이었기에 1, 2집 때는 락을 좋아해보려고 노력을 했을 정도였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락(락의 개념도 굉장히 광범위하니까 모든 락을 다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희준이가 하고 있는 장르)은 별로 내 취향은 아니다. 팬이었을 때는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해봤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깔끔하게 인정했다. 얘 정말 대단하구나, sm을 나와서 사비로, 그렇게 일방적인 안티들의 공격에 엄청나게 상처받았을 텐데도 다시 이렇게 꿋꿋하게 음반을 들고 나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안타깝게도 이 사람의 음악은 내 취향은 아니구나, 라고 깔끔하게 인정했다. 인정하고 나니 뭔가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팬이었었기 때문에 가사를 보고서 크게 웃었다. 정말 속이 다 시원해서, 역시 멋진 놈이야, 라며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긴, 문희준도 벌써 28살이다. 언제나 마음 속 한구석으로 애 취급하고 있었던 면이 없지 않았는데, 참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젠 나를 내버려둬 내 멋대로 살고싶어
어디든지 끌려가는 저 개처럼 살진 않겠어
네가 날 막으면 무릎 꿇고 다신 안 할 줄 알았니
포기할 거라면 처음부터 나는 시작도 안 했어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넌 그런 꿈이 있니
지금이 이 음악이 내게는 내 꿈이고 내 인생야
내가 무얼 하고 살든 신경끄고 살지 그래
이 시간이 흐른 만큼 니 자신은 뭐가 돼있니
난 네가 무엇을 하고 살든 난 관심조차없는걸
네가 인생을 망치든 네가 뒈지건 난 관심조차 없는걸
최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골 빈 인간들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것들을 그대로 속 시원하게 내뱉아놓은 가사.
그러는 너에게는 그런 꿈이 있니?
나는 니가 뭘 하고 살든 인생을 망치든 뒈지든 관심도 없어.
말 그대로다. 아무리 열심히 문희준을 씹어주셔도, 문희준씨는 당신들에게 관심도 없고 당신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 욕하는 재미에 신나라 덩달아 욕해대는 당신들은 과연 꿈이나 갖고 계신지. 이거라면 평생동안 해나가고 싶어, 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긴 있는지. 문희준이 또 하나의 음반을 만들어낼 동안에 당신들이 해놓은 게 있긴 할지.
대단한 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멋진 놈이다. 꽤나 힘든 길을 걸어왔지만, 이 사람은 잘 해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너의 음악의 팬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긴 시간 좋아했던 만큼, 결코 너를 놓지는 못하겠지. 앞으로도 지켜보겠습니다, 문희준씨. 당신은 요즘 세상에 숱한 골 빈 남자 새끼들보다 몇 백 배는 멋진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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