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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외로움

pencilk 2005. 10. 18. 23:46

혼자 여행을 하는 동안보다도 더 지독하게 덮쳐왔던 요 며칠간의 '외로움'이라는, 어떻게 보면 이미 나에게는 참는 것에 익숙해져버려 낯설기만 한 감정. 요즘 나를 이렇게 끊임없이 잠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외로움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고, 그렇게 몇 시간을 침대에서 뒤척이다 겨우 잠들면 결국 낮이 다 되어서야 눈을 뜨게 된다. 처음 며칠간은 단순히 잠이 많아졌나 보다 그랬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밝을 때 깨어 있으면 외로울 뿐이니까, 라고. 무의식 중에 내 몸이 그렇게 느끼고 밝을 때는 계속 잠들려 하고 어두울 때 차라리 깨어있으려 한 건 아닌가 하고.


솔직히 이유같은 건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요 며칠간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때문에 기분이 다운되었고, 이럴 때 술 한 잔 같이 하며 털어놓을 만큼 마음 맞는 사람 하나 여기에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런 각인이었다.


마치 언젠가의 그 혹독했던 겨울처럼, 갑자기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다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다들 나 없이도 즐거워 보여서 외롭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어 혼자 느끼는 괜한 쓸쓸함. 그 때 이후로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지독하게 무서워서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애정을 깊이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적도 있었고,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기 위해 미친 척 발버둥친 적도 있었다. 애써 무덤덤하려, 그렇게 견고하게 굳히고 또 굳혔던 어떤 것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조금씩 사람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외로운 건 누구나 다 그런 거 아닌가. 새삼스레 외롭다고 느끼고, 쓸쓸해하고, 가라앉고. 그런 것도 다 지금의 내가 시간이 많아서 느끼는 걸 테니까. 정신 없이 바쁘면, 외로울 틈도 없다는 걸 겪어봐서 너무나 잘 아니까. 그저 문득문득 허한 기분이 들긴 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니까. 적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맹꽁이처럼 되지는 않으니까.


집에 오니 너무나 기다렸던 친구로부터 편지가 와있었다. 읽으면서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과 너무나 같은 구절들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역시 내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친구의 편지에서 "시간은 남는 만큼 내게 혼란만 주더라"라는 구절을 봤을 때는 정말 얘가 내 머릿 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싶을 정도였다.
밤에는 어제 싱숭생숭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친구들 홈피에 남겨놓은 글들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했다.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오면 개고생이니 왠만하면 적당히 일본에 눌러앉으란다. 여전한 녀석들다운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낭군이라도 생겼으면 몰라도(웃음), 솔직히 지금은 개고생을 하더라도 대신 술 한 잔 하며 같이 욕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한국이 더 좋으니까.


새벽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돌아오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그래,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끊임 없이 머릿 속으로 되뇌이며 살아야지 하지만 순간순간 잊어버리기 쉬운, 어쩌면 가장 쉬워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


또 한 번의 고민의 시기가 어느 정도 끝나가는 것이 보인다. 언제나처럼 한창 헤매고 있을 때는 일기 쓸 엄두도 못 내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갈 때쯤에 일기를 씀으로써 이번에도 정리가 되는 느낌.
일본에 있을 시간은 앞으로 4개월 남짓. 이렇게 외로운 것도 어떻게 보면 지금밖에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조금쯤은 성장해 있겠지.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러브 파이터를 갱신 중인 쯔요시는 기타 연주에 빠져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다. 여기 있으면서 자꾸만 주위에 휩쓸려 잊어버리기 쉬운 '나 답게' 사는 것. 다시 한 번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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