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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阿飛正傳 본문
발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아비의 삶은 마치 발 없는 새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그 중 누구를 사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영원은 없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지나갈 뿐이고 그가 정착할 곳은, 정착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생애 단 한 번 죽을 때에만 땅에 내려온다는 그 새처럼, 아비는 죽음의 순간이 닥쳐서야 자신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스쳐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을, 그 많은 순간들을, 아비는 모두 다 잊었는가.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그들이 함께 했던 1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1분을 나는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아비를 보면서, 거짓말처럼 수리진은 그 1분을 기억하고 말았다.
우습게도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나를 기억하게 될 거야'라는 말 한마디에, 그리고 짧다면 짧은 단 1분의 시간으로 인해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된다. 그 1분은 60초라고 풀어서 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다. 그녀에게 그 1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후에는 헤어져 그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기억될 엄청난 시간이다.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아비를 사랑했던 기억도,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심지어는 그의 얼굴도 다 잊어버리고 그 1분만을 기억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살아간다. 아비는 스스로를 '발 없는 새'라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어. 그는 정말 즐거운 듯이 음악에 맞춰 맘보춤을 춘다. 그렇게 쉽게 사람을 사귀고 쉽게 사람을 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이 아비의 삶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영화 속에서 배역 이름조차 없는)유덕화는 아비를 다그친다. 네가 새라고? 그럼 어디 한 번 날아봐.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새는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처음부터 새는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비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게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피식 웃을 뿐이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기억하면서도, 한 없이 잊었다고 말하고 또 잊혀졌을 거라고 믿는다. 아비에게 혹시 작년 4월 16일 3시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냐고 묻는 유덕화는 수리진을 기억한다. 아비 역시 수리진을, 그리고 그 1분을 기억하지만 그녀에게는 다 잊었다고 전해달라 한다. 하지만 유덕화는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고, 또 그녀는 이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리진이 아비를 잊지 못해 몇번이나 서성거려야 했던, 유덕화가 순찰 돌며 그녀를 기다리곤 했던 공중전화로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의 전화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수리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는 이는 없다. 어쩌면 그녀도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신호음을 들으면서 유덕화가 자신을 다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서로를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다 잊었노라고, 또는 그 사람은 다 잊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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