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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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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pencilk 2007. 5. 26. 01:16
남쪽으로 튀어! 세트
국내도서
저자 : 오쿠다 히데오(Hideo Okuda) / 양윤옥역
출판 : 은행나무 200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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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귀찮다, 초딩이는." 구로키가 불쑥 말했다. "밤에는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대낮에도 학교 가있을 시간에는 못 돌아다녀."
"그래. 대체 누가 정한 거야, 아이들은 꼭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구로키가 그렇게 내뱉었다. 지로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어린이로 사는 건 정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2.

"자, 그럼."
"응, 잘 지내라."
가볍에 손을 쳐들더니 밤길을 사라져간다.
준 이상으로 깨끗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지는 건 대부분 어른들이다. 어린이에게는 과거보다 미래가 훨씬 더 크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질 틈이 없는 것이다.


3.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아버지가 자신을 비웃듯 입 끝을 치켜올렸다.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지로는 놀랐다. 누나도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을 내리뜨고 웃었다.


4.

지로는 어깨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깨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껏 잔뜩 힘이 들어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해방감은 대체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쉰 것 중에서 가장 큰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5.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응. 알았어……."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공중그네>는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었다. 남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는데 나는 그 모든 설정들이 작위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너무 삐뚤어진 건가. 아마도 <공중그네>를 보기 직전에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에 빠졌다는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거다. 한국말로 풀어내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언어유희와 너무나 내 스타일의 주인공들을 실컷 즐긴 후였기에, 너무나 일본스러운 번역소설에서 그리 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결론은 <공중그네>보다는 <남쪽으로 튀어!>가 훨씬 나았다는 거다.
충분히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는 건 가네시로 가즈키의 'GO'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아무튼 괜찮았다. 술술 읽히기도 했고, 재미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