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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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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pencilk 2007. 8. 16. 01:10
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국내도서
저자 : 박현욱
출판 : 문이당 200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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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괴로운 이유 하나. 내 고통을 아는 자는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놈이 아무리 자신의 삶에 대해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이 이러저러하게 산다며 떠들고 다니진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이 알게 되면 이내 열 사람이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게 된다. 그 다음에는? 절반이나마 가졌던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그놈도 불쌍한 놈이다.
설령 불쌍하다 해도 그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알고 보지 않아도 불쌍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
골 때리는 소재. 능수능란한 문체.
뻔뻔하다 못해 어이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아내의 일관되고 줏대있는(?) 행동은, 말도 안 되는 것만 같았던 상황이 점차 '어떻게 보면 말이 되는 것도 같다'는 착각(혹음 깨달음)에 빠지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알고 보면 불쌍한 놈이라는 결론에 이를 뻔 하다가 후다닥 정신 차리는 위의 문장처럼. 그렇게 읽는 이들 역시 주인공과 같이 끝내 아내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수용할 수는 없지만 그저 말도 안 된다거나 저 여자 제 정신이 아니라거나 하며 간단히 고개 돌릴 수 없게 하는 힘. 그것은 아마도 박현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 덕분일 것이다.


박현욱의 문체, 주인공의 심리를 축구에 빗대어 표현해내는 유연함, 그 모든 것이 마치 '선수' 같았다. 너무 능수능란해서 '나 지금 속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코웃음 치며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나도 모르게 빠지게 만드는 그 노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