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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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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신이란 것도 그렇다.
배신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ㅡ배신이야말로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약간이나마 변형시켜준다. 배신과 반칙이 없는 세상이란 누군가 앞서 살았던 삶에 대한 복제일 뿐이다. 배신이란 대열에서 이탈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제3의 것'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누는 데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제3의 길'은 불온하며 불리하겠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온하고 멋진 배신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자유를 배신하고 법치주의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지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사랑 자체를 배신한다. 사랑은 나 스스로 만든 환상을 깨뜨려서 나 자신까지도 배신한다.
사랑에서 환상을 깨는 것이 배신의 역할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사랑은 환상으로 시작되며, 모든 환상이 깨지고 난 뒤 그런데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을 깨달으면서 완성되고, 그러고도 끝난다.
2.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 나는 나를 둘로 나눈다. '보여지는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고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바라본다. '보여지는 나'는 나라기보다는 나로 보이고 싶어하는 나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그저 본다. 영화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꽤 괜찮은 남자를 보는 정도의, 호의를 품은 타인의 시선으로, 그 때 나를 보는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나라는 자아가 제거되어 있다. 그러면 고통에 대해서 조금은 둔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신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상관없다.
3.
그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현석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 역시 나를 자신있고 강하게 본다. 하지만 언제나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을 완전히 던지지 않는 것을 강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한 예상을 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어떤 일에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일, 그 끝에 잠복하고 있을 지도 모를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까지도 관객처럼 거리 밖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현석이 나를 강하게 볼수록 나는 그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의식을 할 것이다. 그런 한편 그가 사랑하는 것은 비겁한 진짜 나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보이려고 했던 작위적인 나일 뿐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그 사랑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안전 조끼를 입고 바다를 수영하는 모험심 없는 사람이 정복의 쾌감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4.
사람은 언젠가는 떠난다. 그러니 당장 사람을 붙드는 것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내가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게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은 떠나보내더라도 사랑은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사랑에 환멸을 느껴버린다면 큰일이다.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꼴이다.
5.
사랑에 있어 사려깊은 불안이나 비탄보다 철없이 행복을 먼저 취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윤선의 능력이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상대가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따져보는 데에 사랑할 시간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은 누가 선물해주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오는 운명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을 하고 안 하고는 취향이며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엄연한 능력이다.
6.
나는 사랑했던 남자가 행복하게 살아서 내게 잊혀지기를 바랐다. 사랑은 자주 오고 결국은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했어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미가 노래했듯이 '그 시절의 너를 또 만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슬픈 인연'이다. 사람의 관계란 끝이 오면 순순히 끝내야만 한다. 아무리 사랑했더라도 그 시간이 지나가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듯 말이다.
7.
"그게 아냐. 아침에 헤어지기 싫어서 그래. 아침에 헤어지려면 더 쓸쓸해."
천장을 올려다본 채 한참 동안 말 없이 누워 있던 현석이 시트를 옆으로 젖히고 일어난다. 내 어깨 위에 팔을 얹는다.
"그러니까 결혼하자는 거야."
"결혼하면 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적어도 이런 식은 아니잖아. 지금보다는 훨씬 덜 불안하고 그리고, 덜 쓸쓸할 거야."
나는 픽 웃는다.
"쓸쓸한 게 꼭 나쁜 건 아냐. 애써 쓸쓸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기분이 나쁜 거지."
8.
뒤돌아보기도 싫었고 서운해하기도 싫었다. 사람의 삶에 헤어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었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인데 일일이 헤어짐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은 끝을 향해서 가고 있다. 누군가 스톱 위치를 누르고 묻는다. 괜찮아요? 아직은요. 자, 그럼 또 시작하죠. ......그러니 걸어갈 뿐이다. 아직은 괜찮다.
9.
핀잔을 받은 기사는 심통이 났는지 갑자기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귀에 익은 노래이다.
-You can dance every dance with the guy......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So darling, save the last dance for me.
-So darling, save the last dance for me.
그의 말이 맞다. 춤 상대가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 춤을 즐기면 그만이다.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춤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춤도 없다. 단지 춤뿐이다.
+
은희경이 인터넷에서 연재했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와 단행본으로 펴낸 글은 그 사이의 수정으로 인해 꽤 많이 변한 것 같다. 얼마 전에 인터넷 연재분을 조금 보게 되었는데 인터넷 연재에는 결말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나는 멋진 남자와는 절대 춤추지 않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어떠한 헛된 꿈도 갖지 않게 만드는 남자와 행복하게 춤춘 다음 돌아와서 진정한 마지막 춤을 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독무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나 혼자가 아니라, 나 자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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