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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음악

이미지가 되어 흐르는 음악

pencilk 2010. 8. 2. 21:12
콘서트를 다녀온 후에 들으면 다르게 다가오는 노래가 있다. 대개 콘서트에서 본 퍼포먼스가 기억에 남았을 경우에 그렇다. 그 노래가 청각을 자극하는 음악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2PM 노래들 중에 솔직히 가사가 좋다거나 안무가 멋있다고 생각해본 노래는 없다. Heartbeat의 안무 정도? 그저 멜로디 자체로서 좋았던 곡들이지 가사가 좋았던 곡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가사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곡이 '너에게 미쳤었다'였는데, 그 과도한 행진곡스러운 비트가 처음엔 많이도 거슬렸지만 첫부분부터 흘러나오는 가사가 절로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결국 이 곡이다.

가사에 충실한 안무라는 게, 자칫하면 굉장히 유치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부분은 가사를 그대로 답습하며 쿤이 앞에서 여자가 일어서고 잡는 손을 뿌리치고, 그런 부분들보다는, '너에게 미쳤었다' 하는 가사가 나오는 부분이다. 준수랑 여자가 부비부비하던 부분이 아니라, 두번째로 나오던 '너에게 미쳤었다' 부분. 남자가 무릎을 끓고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여자가 춤을 추는 부분. 춤을 추는 여자는 남자를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의식하고 있을지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그냥 자기 자신으로서 빛난다. 혼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를 무릎을 끓고 바라보는 남자는 나는 너에게 미쳤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더이상 내 사람이 아니지만 여전히 빛나고 있는 그녀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고, 한때 누군가에게 미쳐 있었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이 노래를 듣는데, 그 부분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영상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늘 거슬렸던 행진곡스러운 비트마저 여자의 춤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다. 이 안무를 누가 짰는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 하나로 '너에게 미쳤었다'의 안무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 그 장면이 확실히 각인되었고, 이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선 자동으로 하나의 영상이 재생될 것이다. 음악이 음악으로서만이 아닌 영상으로 머릿속에 자리잡으면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는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굉장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영상매체에만 영상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이든 음악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든 글이든 혹은 영상물이든, 그 매체의 매력을 뛰어넘어 다른 무언가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 영상처럼 그려지는 글이라던가, 짧지만 너무도 가슴을 후벼파는 가사를 지닌 노래라든가, 혹은 BGM이 영상과 맞아떨어지는 드라마 혹은 영화의 장면이라든가.

내가 쓰는 글들도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더 심해졌다고 느낀다. 심리 같은 건 그냥 나오는 대로 쓰는 거고,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지면서 하나의 장면이 완성되어야만 그때부터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결국 느끼는 건, 나는 결코 텍스트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문장 자체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 글도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그 문장을 이루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 속으로 들어와 어느 순간 하나의 음악이 되어, 혹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귓가를,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그런 문장이다. 이런 순간마다 생각하곤 한다. 나는 소설가보다는 시나리오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보다는 드라마 PD 혹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던 걸까? 하고. 하지만 현실은 셋을 뒤섞어놓은 어중이떠중이일 뿐.(웃음) 지금의 나에게는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의 입장이 훨씬 더 어울린다는 것을 안다. 나도 다시 미친듯이 소비하며 살아야지..


아무튼. 내가 이번 콘서트 DVD를 산다면 바로 너에게 미쳤었다의 여자가 춤추던 부분과, Without U 앞부분에서 한명씩 춤 추는 부분 때문일 거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과 컷을 믿을 수 없다는 난제가 남아 있군. 흠.


아, 물론 신언니 패러디도... 문쿤영.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