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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전시회ㅣ그림ㅣ사진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pencilk 2013. 7. 11. 03:21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린 유명 화가의 전시회는 유명한 그림 하나 갖다놓고 그 외 나머지 전시 구성은 심하게 빈약한 경우가 많아서 이번 고갱전도 큰 기대 없이 갔다. 게다가 올 3월 파리 여행에서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흠뻑 빠져서, 여행 다녀온 이후에도 고흐 자서전, 고흐의 다른 그림들을 찾아본 탓에 좀 웃기지만 고갱에 대한 묘한 반감까지 생긴 상태였다. (고흐는 고갱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쁜 ㅅㅋ...)


무엇보다 고갱의 그림이 모네나 고흐처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이 아니었다. 지상 낙원을 찾아 타히티 섬까지 가서 그렸다는 그림들은 동양인인 나에게는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고, 모네나 고흐처럼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이 좋달까. 그래서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웬걸. 별 기대없이 가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 고갱의 대표작 '설교 후의 환상', '황색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물론이고, 고흐와 함께 작업하던 시기에 그렸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처럼 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던 그림도 있었고, '타히티의 여인들'처럼 익숙한 그림들도 많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타히티의 여인들'이 익숙한 이유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기 때문이었군..) 일부러 오디오 가이드도 빌려서 전시를 보긴 했지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처럼 큰 그림은 따로 해설을 자세하게 잘 해놓아서 관람하기도 좋았다.


다 좋았는데, 사람이 막 터져나갈 듯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전시회 보는 내내 한쪽 귀가 막혀서 멍멍했다가 다시 뚫렸다가를 반복. 작품 해설이나 고갱이 연대기 등은 굉장히 큰 폰트로 적혀 있었는데도 난시가 심해진 건지 글씨가 너무 흐릿하게 보여서 엄청 가까이에서 인상 쓰며 보느라 진이 다 빠졌다. 2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만 마시고 나가서 그런가. 컨디션 난조 탓에 전시실 중간중간 있는 의자마다 앉아서 한참 그림을 쳐다보며 엄청 쉬엄쉬엄 봤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던 것도 같다. 


아무튼 고갱전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갈 것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