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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선 특파원의 글 본문
워싱턴에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생활리듬도 빨라졌다. 서울과 시차가 13시간 나는 워싱턴에서 ‘폐인’처럼 살고 있다. 새벽 3~4시에 자니까 오전 10시 전후에 일어나서는 점심 약속에 뛰어가기도 바쁘다. 워싱턴 특파원이 이런 식으로 사는 줄 모르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아직도 자고 있어요?”라고 물으면, 일일이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어서 그냥 게으름뱅이가 되고 만다. 속으로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라고 궁시렁거리면서….
게다가 요즘은 복잡한 일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서 새로 공부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70대 미국 할머니 기자가 “기자의 일생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뭔가 새로운 일이 터지면, 나는 그 분야의 일을 알 만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기자생활이 10년만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이전에 배우고 익힌 것을 슬슬 굴리면서 느긋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안된다.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에 친구가 많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다 알겠는가. 누가 잘 알고 있는지를 아는 것, 사실 그게 기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 진짜 하고픈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여름내내 마음에 걸렸던 일이 있는데 독자들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대한 답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독자가 보낸 메일에 대한 답은 거의 쓰지 못한다. 이 자리를 빌려서 일단 사과를 드리겠다. 정말 그럴 시간이 없다. 하지만 어린 학생 독자의 메일에 답장을 쓰지 않은 것은 마음에 걸린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자나 특파원이 될 수 있느냐’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거의 같은 질문을 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한번도 답을 쓰지 못했다.
“왜 기자가 되셨나요?”-“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어떻게 하면 특파원이 될 수 있나요?”-“회사에서 발령나면.”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월급 받을 때.”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특파원 생활이 멋지다고 할 만한 일도 별로 없어서 더 그렇다. 한밤중에 눈 시뻘개져서 웅크리고 앉아 기사를 쓰는 모습은 기자 지망생들을 실망시킬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가 2시간 자고 일어나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취재를 나가는 장면에서는 아마 다들 마음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나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어릴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사람이 대체로 행복하다는 것이다.(기자들은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하는 데 더 익숙하다.) 꿈을 이룬 인생이니까. 직업도 결혼과 마찬가지라서, 남들이 좋다고 해봐야 다 소용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과 일치시킬 수 있으면 환상적인 인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돈까지 잘 벌면 금상첨화고.
그리고 그동안 배운 또 한 가지 교훈, 세상에 ‘멋있는 직업’은 없다. 그 일을 ‘멋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멋있어 보이는 일도 꼬질꼬질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후져보이는 일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직업이 사람을 멋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업을 멋지게 만든다’는 것. 그간 받은 이메일에 이런 답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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