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
- Total
pencilk
이기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본문
![]() |
|
그러니까 그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팔 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이었다. 팔 년 전이라면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거의 일 년 넘게 방바닥과 혼연일체,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뭐, 이유야 말 안 해도 뻔하지 않겠는가. 삼류대학을, 그것도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토익 성적이나 운전면허증도 없이, 유학 경력이나 인턴사원 경력 하나 없이, 그렇게 '배째라' 식으로 졸업을 했으니, 그래 너 참 잘했구나, 여기 네 친구 방바닥하고 서로 인사 나누렴, 저런 방바닥이 어깨가 없네, 그럼 네가 방바닥에게 어깨동무를 해주고, 자, 치이즈, 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시간이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지나더니, 어느새 일 년이, 거기에 또 반년이 더해진 것이었다(물론 그 기간 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이력서도 넣어보고 소위 말하는 '압박면접'이라는 것도 딱 한 번 본 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면접관이 나에게 한 질문이라는 것이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한라산을 왜 니들 마음대로 서울로 옮기고 난리냐, 난 제주도에 가본 적도 없다, 하고 소리쳐주고 싶었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답변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저기, 저 서울에 있는 북한산의 이름을 한라산으로 바꾸고, 저기 그 뭐냐,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의 이름을 북한산으로 바꾸는 겁니다'였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
북한산 이름을 한라산으로 바꾸는 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나는 그래서 지금 졸업을 앞두고 방바닥만 긁고 있는 것인가.ㅋㅋ
도대체 그런 발상들은 어디서 쏟아지는 건지.
현대문학의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은데 이기호는 그 중 단연 최고.
"그거 마미손인가요?"
"예? 아…… 글쎄요, 상표는 안 봐서……"
"마미손이 튼튼한데…… 제가 고무장갑은 잘 알거든요."
"아, 주방에서 일하셨구나?"
"아니요, 그냥 그걸 얼굴에 몇 번 써봤어요."
"괜찮아요, 아저씨. 사실, 전 다 알고 있었어요……
사실은…… 저도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아놔. ㅋㅋㅋㅋ 정말 미치겠다.
이기호 당신 정말 어떤 사람인 거야.ㅋㅋㅋㅋ
'THINKING > 책,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0) | 2007.01.12 |
---|---|
공지영, 『수도원 기행』 (0) | 2007.01.08 |
신경숙, 『깊은 슬픔』 (0) | 2006.12.29 |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1) | 2006.12.10 |
장폴 뒤부아, 『프랑스적인 삶』 (0) | 200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