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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푸코, 『담론의 질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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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수많은 나눔의 체계로 되어 있는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나눔들이 모두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많은 나눔들이 그 아래에 어떤 비객관적인 요소들의 작동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미셸 푸코의 기본적인 통찰이다. 푸코는 우리의 사회가 동일자(同一者)와 타자(他者)들을 나누는 경계선들의 복잡한 체계로 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눔의 체계 속에는 어떤 가치상(價値上)의 문제가 언제나 섞여 들어가 있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푸코의 사유는 한마디로 타자(l'ature)의 사유이며 동일자의 바깥에서 작용하는 바깥(le dehors)의 사유이며 동일자와 타자가 갈라지는 경계선상에서 성립하는 극한(la limite)의 사유이다.
푸코의 사유는 타자의 사유이다. 한 사회에서의 나눔의 여러 체계들은 반드시 배제(排除)의 체계(體系)를 함축한다. 나눔의 이편과 저편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드리우게 된다. 정상인과 광인의 나눔, 건강한 사람과 병인의 나눔, 반공주의자들과 용공분자들의 나눔, 합법적인 사람들과 위험인물들 또는 범죄자들의 나눔, 남자와 여자의 나눔, 성인과 어린이들의 나눔, 공직자와 일반인의 나눔 등 한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의 나눔은 단순한 이론적인 문제가 아닌 평가의 문제이며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눔을 통해 스스로를 정립하는 동일자와 그 나눔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는 타자가 대립하게 된다. ...(중략)
[광기의 역사]
푸코는 광기란 언제나 이성'이 아닌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이성과 합리성이 다르게 정의된다면 그에 따라 광기는 그 합리성'이 아닌 것'으로 정의되어 왔던 것이다. 광기는 결코 그 자체로서 정의된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합리성의 반대급부로서 정의되어 온 것이다.
한 사회의 정립은 그의 반정립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어떤 것의 동일성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그 동일성이 아닌 것, 즉 타자성(他者性)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의 동일성은 그 동일성'이 아닌것'으로 정의되곤 한다. 다시 말해서 한 동일자가 자신의 동일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닌 것을 상정해 놓고서 그 타자에 스스로를 대립시킴으로써 자신의 동일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이러한 자신의 거울─부정의 부정을 매개로 해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비추어 주는 거울─을 요구한다. 예컨대 중세의 나환자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다시 말해 중세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해주던 타자가 소멸되기 시작했을 때 그 역할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생양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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