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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비오는 날

pencilk 2003. 9. 8. 02:18

하루 종일 지치지도 않고 비가 계속 내렸다. 지하라서 창문 바로 밖이 도로이기 때문에 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지하는 햇빛 비치는 날에도 좀 어둡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는 말할 것도 없이 침침하다.

문득 집이 생각났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를 지독하게도 싫어했지만,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야 하는, 즉 꼭 밖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차에서 튄 물로 옷이 젖은 채로 교실에 앉아있는 것도, 우산이라는 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비오는 날,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무언가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셨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두꺼운 옷을 꺼내입곤 했다. 창 밖으로 들리는 반쯤 차단된 조용한 빗소리를 듣는 것은 참 따뜻한 기억이었다. 비오는 날의 집은 내게 참 따스했다.

지금 살고있는 곳은 비가 오는 날에도 차갑다. 나를 맞아주시는 어머니도 없고, 바깥 공기가 차가움으로 인해 자연스레 생겨야 할 훈기도 없다. 나 혼자 있어서 그런지 집안이 춤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학교에 갔다오는 동안 혼자 집에 계시면서도 집을 훈훈하게 만드셨는데, 나 혼자서는 그게 안 되나보다. 내가 기억하는 집은 참 따뜻했는데, 지금 나의 자취방은 참 춥다. 마음이 춥다. 특히 비오는 날이면.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산이 그립다거나 부모님이 보고 싶다거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던 나인데, 하루 종일 징그럽도록 비가 내린 오늘, 어머니가 계시는 집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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