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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좀 해줘야 할 것 같다 본문
어제 밤 새서 영화를 3개나 보고 아침에 잠들었는데 전화가 와서 3시간 정도 자고 깼다. 깬 김에 인터넷 좀 둘러봐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베트남에 이어 오만한테도 졌다고? 그것도 3대 1로?
이관우는 부상으로 뇌진탕에 왼손마비, 기억상실증 증상까지?
찌라시의 오버라고 믿고 싶은 기사들이 한꺼번에 보여서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기사에도 뚜렷이 명시되어 있는 남일선수의 자책으로 인한 한 골. 아예 기사에서 남일선수의 자책으로 먹은 골이라고 적혀 있는 걸로 보니, 변명의 여지 없이 그의 자책인가보다. 어떤 상황이었을지는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경기 볼 때마다 간간히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남일선수 팬이다보니, 오만한테 진 것도 진 것이지만 그 중 한 골이 남일선수의 자책이었다는 게 못내 속이 쓰리다. 그 순간 얼마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까, 생각하니 목이 따갑고, 또 얼마나 욕을 먹을까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어 그런 글을 봤다. 실점하고 나서 많이 실망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묵묵히 남은 경기 잘 뛰어줬다고.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김남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데-. 그리고 안심이 되었다.
그래, 지금 남일선수에겐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채찍이 필요할 거다. 네덜란드 갔다 와서 월드컵 때도 간간히 보여줬던 불안한 플레이가 사라지고 여러모로 굉장히 성장해서 와서 정말 뿌듯했었는데, 이미 나는 김남일을 1년 넘게 지켜봐왔단 말이다. 뭐 그 전부터 지켜봐온 분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겠지만, 적어도 내가 왜 김남일이라는 축구선수에게, 그리고 김남일이라는 인간에게 빠졌는지 정도는 확실히 안단 말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경기 내내 힘들었겠지만, 그걸 표정으로 드러내거나 소심해지는 것이 아닌 그저 묵묵하게 나머지 경기를 할 사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전혀 힘들어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아니다. 다만 그는 그렇게 이번에도 어른스럽게 잘 견뎌낼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거다.
나이스 김남일에 갔더니 이번에는 비판 달게 받읍시다-라는 글들이 보인다. 왠지 뿌듯했다. 거기서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그러면 수비가 막아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 식의 글들이 난무했으면 참 짜증났을 거다. 물론 다들 안타까워 하고 있는 마음은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그 곳에 가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엑셀시오르 갔을 때도 그렇고, 참 멋진 팬들이 많은 곳이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처럼, 이번에는 욕 좀 해줘야 할 것 같다.
요즘엔 좀 괜찮아졌나 했더니 결국 터져버렸군. 오랜만에 실수하고 나니 속이 쓰리지? 월드컵 하기 전의 그 언젠가도 떠오를 거야, 비판도 달게 받자.
충분히 욕 먹고, 다시 잘 해갈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믿으므로.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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