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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pencilk 2005. 6. 18. 00:51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며 낄낄거리면서 생각했다. 그래, 나는 역시 한국인이야. 삼순이를 보면서 웃을 수 있다는 건 한국인이라는 증거다. 아무리 한국말이 능통하다 해도 한국인이 아니면 웃을 수 없는 미세한 말투의 차이, 어감의 차이, 그리고 한국 사람들만 아는 것들의 패러디 등등.


일본에 있으면서 가끔 생각한다. 아니, 오기 전부터, 내가 교환학생을 올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안 했을 때부터도 그러곤 했었다. 만약에 유학을 간다면 말이야, 아무리 내가 그 나라 말을 잘 하게 되서 의사 소통이 잘 된다 해도 그게 진짜 '대화'겠냐 라고. 그저 '의사 소통'이지 그게 '대화'겠냐 라고.
뭐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ㅡ그렇게 치면 외국인들과는 절대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소리가 되니까 그건 아니라고 보지만ㅡ 그렇지만 확실히 그런 건 있다. 일본에 와서, 의사 소통이 안 되서 답답했던 경험은 그다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삼순이를 보고 웃듯이, 그렇게 일본인들은 다 웃는 상황에서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은 많다. 오와라이도 그렇고, 일본인들이 하는 농담들에도 그렇고. 물론 웃을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자꾸 겪어가면서 그게 농담이라는 것, 웃긴 거라는 걸 알게 되고 같이 웃을 수 있게까지도 된다 해도, 그건 진심으로 웃는 거라기보단 학습에 의한 거랄까, 그런 느낌.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말의 미묘한 차이들에 새삼 눈물 쏙 빠지게 웃어대면서, 나는 한국인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한다. 한국에 있을 때 봤다면 별 생각없이 스쳐갔을 드라마의 배경들을 보면서 그리워한다. 아, 종로다. 내가 학원 가느라고 매일 지나쳤던 거리, 또는 그냥 종로의 그 적당한 분주함이 좋아서, 그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여유롭게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걸으면서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을 사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정동 길을 걷고,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느꼈던 게 떠올라서. 서울에 온 지 4년이 지났는데 아직 못 가본 남산타워에 가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부러워하면서. 아, 한국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전혀 모르는 청담동, 압구정동, 강남 그런 동네가 나왔다면 별 생각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종로라서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더 좋아져버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별 생각없이 스쳐갔던 거리들을 이 곳에서 그리워한다. 언젠가 끄적였던 글에도 쓴 적 있듯이, 벗어남으로서 일상의 낯설음을 발견하고 또 그 낯선 일상을 그리워하면서, 돌아갔을 때는 좀 더 소중히 그 생활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면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리워 할 한국이라는 나라가 내 안에 있음이, 그리워 할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리워 할 가족과 친구들, 우리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생각한다. 지금 현재가 너무나 괴로워서 당장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1년 후면 돌아갈 나의 사람들과 내가 있을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힘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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