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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빈자의 미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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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2년의 공간학생건축상의 주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조명한 소규모 도시건축'이었다. 그 출제와 심사를 담당한 나는, 많은 출품작 가운데서 한 학생의 작품을 발견하고 나의 오래된 질문에 다시 빠질 수 있었다. 그 판넬은 침묵의 메타포로 가득차 있었는데, 나는 그 학생의 작품을 읽으며 막스 피카르트의 말을 기억해 내었다.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
아기자기한 내부의 공간을 자폐적일 정도의 무표정으로 거리의 아우성에 대항한 그 침묵의 벽은, 침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그 거리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음이다.
그 학생이 인용한 사무엘 베케트의 대사.
-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 네가 무엇을 말하기를 원함을 알지 않는다는 것, 네가 무언가 말하려 생각함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도 말하기를 그칠 수 없다는 것 혹은 더욱 더 힘들게도 그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없다는 것......(Molloy, 1955) -
2.
뉴욕에서 이방인의 삶을 같이 살았던 몽드리안의 눈에 비친 뉴욕의 밤거리 풍경과, 불법 체류자로서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수화의 눈에 맺힌 이방 뉴욕의 밤거리는 'Boogie-Woogie'와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만큼 다른 것이다. 몽드리안의 접근이 한계음을 갖는 반면 수화의 그림에는 그가 찍은 무수한 점처럼 그 한계가 없음을 느낀다.
나는 그 수화의 그림에서 현대건축이 봉착한 한계 - 미로를 빠져나갈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 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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