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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본문
요즘 들어 나야말로 정말 아름다움의 노예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기존에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도,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실망한 적이 있더라도, 그것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다시 마음이 기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모든 단점들 앞에 눈 멀고 귀 멀게 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나 역시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꼼짝 없이 멸시 당하고 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학생 시절까지는 말이다. 나는 오히려 내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멸시했었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든 노력을 비웃었고, 외면의 아름다움이란 내면의 공백을 가리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하는 변명 혹은 자기 방어쯤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울 수록, 다른 어딘가가 부족할 거라는 확신마저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럴 시간에 내면의 내공이나 더 쌓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지독히도 당위적이고 진부하며, 또한 건방진 생각을 하며 살았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신 있을 수 있었던 걸까.
아니, 자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합리화했던 걸 게다.
릴케는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반드시 옳은 가치관인지 아닌지 여부를 왈가왈부하고자 함이 아니다. 옳든 그르든, 나에게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비난할 자격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힘이고 무기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아름다움을 좇는 것은 지독히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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