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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환상의 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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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만일 우리가 문에 이르기 전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더라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만일 내가 앨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곧장 집 쪽으로 걸어가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다른 쪽 하늘을 쳐다보았다가 커다란 둥근 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날 밤하늘에는 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지금도 여전히 맞는 말일까? 만일 내가 구태여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여전히 맞는 말일 것이다. 내가 달을 보지 못했다면 그 달은 절대로 거기에 없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흡수하려 애를 썼지만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도 틀림없이 그만큼은 되었을 것이다. 좋게건 나쁘게건,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뿐이고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방법론을 천명하고 원칙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달을 보지 못했다면 달은 절대로 거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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