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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 『살인자의 건강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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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슈 선생님, 선생님 같은 분 앞에서 애둘러 말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기자들의 생리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니다. 대문호로서 죽음을 눈앞에 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며 기분은 어떠신지요."
침묵, 한숨.
"모르겠소, 기자 양반."
"모르신다고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되지는 않았을 거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슴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이젠 잘 모르겠소. 글을 쓰지 않은 지가 퍽이나 오래 되었거든."
2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흥미진진해 하는 동시에 또 수줍어했다면 그게 바로 얼치기 작가라는 증거요.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겠소?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직업이 작가라는 직업이오. 문체니 주제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니까. 그것도 말이라는 걸 갖고 그렇게 한단 말이지. 화가나 음악가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네 작가들처럼 말이라는 잔인한 도구를 갖고 그렇게 하진 않소. 암, 기자 양반,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음란하지 않다면 회계사나 열차 운전수나 전화 교환수 노릇을 하는 게 더 낫지. 더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 아니오.
3
"부모님께선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어무 것도 안하셨소."
"어째서요?"
"금리로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대대로 물려온 재산이있었거든."
"집안에 선생님 말고 다른 자손은 없습니까?"
"세무서에서 나왔소?"
"아뇨, 전 그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남의 일에 참견마시오."
"타슈 서생님, 기자가 하는 일이라는 게 원래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겁니다."
"직업을 바꾸시오."
"절대 안 됩니다. 전 제 직업이 좋습니다."
"한심한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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