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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YES24

[책방이십사] 나는 000의 全作주의자다

pencilk 2011. 5. 30. 00:37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저
예담 | 2009년 07월

박민규의 글은 재미있다. 쉽게 술술 읽힌다. 황당하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낄낄거리며 웃게도 만들고, 기존의 형식을 파괴한 문장이나 한 장을 가득 채운 낯선 단어들로 어안이 벙벙하게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진지하다. 허무개그 풍의 웃음코드가 곳곳에 보인다고 해서 속으면 안 된다. '아내에게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그는 그러나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 글을 쓴다. 문학상을 받을 때마다 '우리 너무 진지해지지 맙시다' 하고 말하는 듯한 수상소감을 밝히지만 그의 글은 그 어떤 글보다 진지하다.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지 않고, 마치 농담처럼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나는 좋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어려운 것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 할 지라도, 또한 그것들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삶인 이상 우리에게는 농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출간된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YES24 블로그를 통해 연재를 했던 소설이다. 하지만 이 글은 보통의 인터넷 연재 글과는 달리 술술 읽히지 않는다. 그만큼 초반에는 참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후 쓴 단편들에서부터 조금씩 변해가더니 이 작품으로 확실히 변화를 꾀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그것이 '변했다'는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박민규 식의 위트와 재미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변했다, 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는 거다. 잘 생각해보면 박민규는 언제나 진지하고 심오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부터 정말 정신 없이 빠져들어 '읽어치운' 책이다. 책장을 덮는데, 뭐 이런 작가가 다 있지 싶었다. 책 한 권 전체에 다 밑줄을 쫙쫙 긋고,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매일매일 꺼내 읽고 와삭와삭 씹어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과, 우매한 인간들의 사랑으로 인해 더욱 더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 그 복잡미묘한 관계에 있어서 어느 쪽이 가치 있는 것이고 어느 쪽이 가치 없는 것이라고 그 누가 단정지을 수 있을까. 소설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반전도 반전이지만, 글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도록 쏟아지는 요한의 말들만으로도 이 소설은 최고다. 최근 몇 년간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강한 울림을 줬던 책이었다. 부디 모두들 초반부에서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보시길.

  


YES24 도서팀 블로그 <책방이십사> - '테마책방'
원문 : http://blog.yes24.com/document/4265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