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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nze - 기어코 떠나가는 내 모습 본문

TRAVELOGUE/Italia

Firenze - 기어코 떠나가는 내 모습

pencilk 2012. 11. 28. 00:56

 August 11-12. 2012 


어쩌다 보니 3년 연속 여름 휴가를 유럽에서 보냈다. 파리, 런던, 그리고 올해 피렌체까지. 누가 들으면 잘 사는 집 딸이거나 연봉 엄청 높은 회사라도 다니는 줄 알겠지. 하지만 현실은, 3년 연속 유럽행의 결과가 늘어난 빚이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하지만 내게는 퇴직금이 있다고 위안하며 그 후폭풍을 견뎌내고 있는 평범한 31살 서점직원 A일 뿐.


왜 빚까지 져가며 3년 연속으로 11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그 먼 데까지 날아갔느냐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그저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히는 그래야만 사표를 쓰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달까. 특히 올해 피렌체로 떠나던 때의 내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사표를 던지지 않고 피렌체행 비행기를 탄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고, 그래서 가끔씩은 조금 후회도 한다. 그냥 그때 사표를 던지고 떠났어야 했어, 라는. 그랬으면 뒤에서 욕을 디지게 먹었겠지.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건 다 빼먹고 그저 나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면서. 생각하니 또 열받으니까 이쯤하고. 



봄에 나온 월간 윤종신 곡 중에 '도착'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어쩜 그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쿡쿡 쑤시던지, 피렌체행 비행기 안에서 내내 이 노래를 들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노래는 이별 후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나 역시 5년동안 몸바쳐 일한 회사로부터 실연당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으니까.


'기어코 떠나가는 내 모습'이라는 첫구절부터 울컥하게 하는 노래. '낮밤 눈동자색 첫인사까지 모두 바뀌면 추억 미련 그리움은 흔한 이방인의 고향 얘기'라는 부분도 좋지만, 최고의 가사는 바로 '잘 도착했어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아', '잘 살 것 같아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날 위로하지 않아' 이 부분이었다.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일 만큼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외로울 것을 알면서도 혼자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혼자 떠나는 것이 더 편한 이들의 심정을 너무나 간단한 한 문장으로 표현해서, 역시 윤종신은 좋은 작사가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고 지독히 혼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차라리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고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그런 심정이 단 두줄의 가사로 내 가슴을 내리쳤다.



늘 그렇긴 했지만 특히 올 여름의 피렌체행은 힐링의 목적이 지대했기에, 작년의 런던 한인민박 사태를 겪은 후 호텔만큼은 무조건 좋은 데로 잡자며 3월에 미리 페라가모에서 운영하는 Gallery Hotel Art를 예약해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페라가모라고 해서 기대가 너무 컸던 건지 생각보다는 방이 좀 좁긴 했지만, 그래도 나무랄 데 없는 호텔이었다. 모든 시설이 페라가모의 명성답게 깔끔하고 아늑한 데다 베키오 다리 앞이라는 위치도 좋았고. 아, 딱 한가지 흠은 피렌체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여서 역에서 호텔까지의 거리가 버스 타기에 애매하기도 하고 버스가 잘 다니지도 않아서 그냥 캐리어 끌고 걸어서 이동을 했는데, 36도를 육박하는 8월 중순의 태양 아래에서는 좀 많이 힘들긴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밖이 너무 더우면 수시로 호텔로 돌아와서 쉬고 밤에는 조용히 혼자서 글도 쓰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극한 상태에 몰려서 여행을 떠나다 보니 '될 대로 되라 얼어죽을 글은 개뿔 샤핑이나 하자 샤핑샤핑' 이 여행의 모토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좀 아쉽긴 하다. 결국 망할놈의 회사가 내 피렌체 여행도 절반 이상 망쳐놨구나.



그래서일까. 땀 뻘뻘 흘리며 힘들게 찾아간 호텔에서 좀 쉬고 다시 나와서 어슬렁 어슬렁 걷다 발견한 관광명소들에서도 나는 내 심리상태와 비슷한 동상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호텔을 나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와 허겁지겁 가이드북을 꺼내게 만들었던 베키오 궁전.

관광명소가 지도상에서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광장에 들어서니




모조품이긴 해도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 서있건만 (음, 역시 대두야...)



내 눈에는 이런 동상들만 들어오는 거였다.



당시의 내 심정이 투영된 동상 사진들.





아름다운 베키오 궁전



여기는 아마도 산타크로체 성당..

맞는지 모르겠다. 근데 찾아보기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