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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nze - 조토의 종탑에 올라 두오모를 바라보다. 본문

TRAVELOGUE/Italia

Firenze - 조토의 종탑에 올라 두오모를 바라보다.

pencilk 2013. 7. 1. 05:42

August 12. 2012


내내 춥고 흐렸던 파리에서의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요즘 날씨와 너무 맞지 않아, 내내 더웠지만 흐린 날 하루 없이 화창했던 작년 여름의 피렌체 여행이 생각났다. 실제로 파리에서도 피렌체를 그리워하기도 했고. 유럽은 기온이 높아도 습도는 높지 않아서, 8월의 피렌체는 기온이 35~6도까지 올라갔지만 다 때려치우고 호텔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이번 파리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추울 때보다는 차라리 더울 때 여행하는 것이 낫다. 

특히나 혼자 하는 여행은.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연결된 힐튼 인에서 1박까지 한 후 루프트한자 시티 에어라인인가 하는 소형 비행기로 트랜스퍼하여 힘들게 도착한 피렌체였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호텔까지 지도도 보는둥 마는둥 하고서 캐리어를 끌고 걷느라 땀 범벅이 되었지만,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잠시 뻗어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다시 나선 피렌체의 거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21살 때 떠난 배낭여행에서 일정에 있었지만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원래 계획보다 훨씬 늦은 밤에 도착해 멀리서조차 그 유명한 두오모도 보지 못한 채 잠만 자고 떠나야 했던 도시. 기차역과 호텔 외에는 가본 곳이 없어서 그저 호텔이 좋았다는 기억만 남아 있는 도시. 그래서 사실 내게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낯선 도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번째로 찾은 피렌체는 내게 한없이 다정했다. 아마도 피렌체가 발길 닿는대로 걷다 보면 아름다운 궁전, 성당 등의 건축물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작은 도시여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토의 종탑과 두오모는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서 쿠폴라를 보려면 종탑에, 종탑을 보려면 쿠폴라에 올라야 한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도시를 대표하는 풍경을 눈에 담아야 비로소 내가 여기에 도착했구나 하는 실감이 나곤 한다. 

쿠폴라가 포함된 시내 풍경을 봐야 진짜 피렌체에 온 것이 실감이 날 것 같아서, 첫날은 조토의 종탑에 오르기로 했다.



종탑에 오르기 전, 입구에서 쳐다본 두오모.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부분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기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티나지 않게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쿠폴라에 올라 보고 나서야 깨달은 건데, 조토의 종탑은 오르기에 가장 이상적인 전망대다. (심지어 올해 파리의 노트르담 전망대에 오르면서도 피렌체의 종탑을 그리워 했다.) 



높은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들은 대부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그래서 뒤따라 올라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떠밀리듯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조토의 종탑을 오르는 계단 역시 좁고 어두운 건 마찬가지지만, 계단을 오르다 보면 이렇게 중간중간 작게 뚫려 있는 공간을 통해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어쩌면 두오모 쿠폴라나 파리의 노트르담 전망대처럼 관광객들이 많이 오르는 전망대가 아니라서, 뒤에서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에 쫓기듯 급하게 쉬지 않고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조토의 종탑의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종탑에는 어느 정도 계단을 오르면 앉아서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2-3번 나온다. 

위 사진이 중간쯤 올라왔을 때 나타난 공간에서 잠시 쉬다가 찍은 사진.


사방이 뚫려 있는 그 공간에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분다. 아무 생각 없이 치마를 입고 올랐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또 한 손으로는 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35도를 육박하는 한여름, 에어컨이 나오는 호텔이 아닌 실외에서 그토록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 바람을, 눈앞에 서서히 펼쳐지던 피렌체 시내 풍경을, 마침내 내가 피렌체에 왔구나 하고 가슴을 파고들던 해방감을, 아마 잊지 못할 거다.




다음 쉼 공간. 아까보다 조금 더 높아진 시야.





그리고, 드디어 종탑의 정상.

사진만 봐도, 그날의 바람이 떠오른다. 정신없이 나부끼던 머리카락도,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만 같던 치맛자락도.

마침내 그 지옥같던 현실에서 잠시나마, 진짜로 떠나왔다는 안도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