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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 여행의 유동성과 모순에 대하여 본문
혼자서 많이 걷는 여행은 외로운 만큼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게 하고, 그만큼 좋으면서도 지친다. 호텔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걷느라 혹사당한 다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사소한 불안, 오해, 설렘과 불쾌감 등등이 뒤섞인 피로로 인해ㅡ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ㅡ 씻고 바로 침대로 쓰러지기 일쑤다. 지금까지는 늘 여름이 끝나가는 9월 경에 휴가를 떠나서 추위와 싸운 적은 없었는데, 하루종일 흐리고 바람이 부는 파리의 날씨는 약간의 감기 기운과 함께 나를 자꾸 호텔로 이끈다. 특히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서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겨우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하자 마자 대규모 시위로 인해 눈 앞에서 출구가 막혀버렸을 때는 모든 여행 의지가 상실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끌어내 샹젤리제 다음에 가려고 생각했던, 해질녘 에펠탑 풍경을 볼 수 있는 샹 드 마르스 공원 앞에 도착하고도, 호텔로 갈 수 있는 기차역을 발견하자 마자 서브웨이 샌드위치 하나를 사들고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는 커녕 구름만 가득한 날씨와 종일 추위와 싸우느라 슬슬 시작되려 하는 감기기운이 한몫 했을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비교적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이다. 엄청난 일정표대로 움직인다는 건 아니지만, 꼭 가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만큼은 세세하게 챙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일수록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그 계획이 틀어진 경험이 크게 없었는데 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첫째날도 둘째날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로 인해 가려고 계획했던 곳들 코 앞에서 계속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그 이틀이 주말이었다는 것이 아마도 큰 이유였겠지만, 휴가철인 여름보다 파리지앵들이 파리에 남아 있는 지금 같은 비성수기의 주말에는 그들도 미술관에 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마르모탕 클로드 모네 미술관은 아마도 관광객들에게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던 듯 사람들로 북적였고, 뤽상부르 미술관 샤갈전의 엄청나게 긴 줄은 결국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거기다 하필이면 미리 예고되었던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 하필 그 시각에 샹젤리제에 도착하는 절묘한 타이밍까지.
호텔로 돌아오니 목이 칼칼하다. 집에 있는 전기장판이 너무 그리운데, 파리의 호텔에는 전기장판은 커녕 온풍기도 없다. 최대한 뜨거운 물로 조금 긴 샤워를 하고, 친구가 파리의 3월은 아직 추울지도 모른다고 혹시 모르니 챙겨가라고 했던 종합감기약을 먹고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켰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샌가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뜨니 새벽 1시. 잠들기 직전, 이런 몸 상태로 과연 내일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최대한 실내로만 돌아다녀야 하나, 내일모레 엑상프로방스는 어떻게 가나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침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내일 계획을 하나도 안 세웠다. 첫째날 둘째날에 계획하고도 가지 못했던 곳들이 있어 남은 일정들 속에 끼워넣고 조율을 해야 한다. 목은 여전히 칼칼하고 몸상태가 그닥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내일은 어디를 가지 생각하기 시작하니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겨우 몇 시간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호텔로 막 돌아왔을 때 느꼈던 피로를 내일에 대한 기대가 금세 앞지르고 나가 나를 설레게 하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결코 불가능한 얘기다. 주말에 약속이 있지 않고서는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고 폐인놀이나 하는 내가, 그 모든 귀찮음을 무릅쓰고 기어코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아마도 바로 그 설렘 때문일 거다.
어쩌면 가장 춥고 피곤했을 하루를 끝내고, 나는 또 다시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가벼운 감기기운을 매달고서, 이런 글도 끼적거리고 있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9분. 사실은 어제도 잠들었다가 3시 반에 깨서 그대로 더 이상 자지 않고 여행 계획 세우다가 호텔을 나섰다. 그래서 더 피곤했던 건지도. 오늘은 1시간이라도 다시 눈 좀 붙였다가 나가야지.
조금이라도 좋으니, 오늘은 햇빛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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