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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지옥 본문
효선 과장님이 추천하셨던 광화문 폴 바셋(Paul Bassett)에 와 있다. 블로그들 찾아보니까 아이스 라떼가 그렇게 쫀득쫀득(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블로거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랬다)하고 특이하다던데, 가능하면 아이스 라떼에 도전해볼 용의가 있었으나 며칠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태풍에 버금가는 돌풍으로 인해 도저히 아이스 음료를 마실 수가 없어 그냥 따뜻한 카페라떼와 초코 슈크림을 시켰다. 여유있게 책도 읽고 오래 앉아 있을 계획으로 푹식푹신한 쇼파와 쿠션이 있는 구석 자리를 잡았는데, 자꾸만 어디선가 바람이 나온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바람인지. 코트를 벗지 않으면 좀 나을 것 같지만 치마를 입고 온 탓에 다리가 추워서 코트를 벗어 덮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최소한 9시까지는 버틸 생각인데.
며칠 전 단행했던 극단의 조치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아침 7시 반에 잠들고도 극강의 정신력으로 10시 반에 기상, 핫식스 드링킹하고 무려 압구정까지 가서 전시회를 보고 미용실도 갔다 오는 강행군을 벌였으나, 너무 강행군이었던 탓에 그날 집에 오자마자 밤 9시쯤 잠이 들고 말았다. 그 결과 자정 쯤에 눈이 떠졌고, 결국 그대로 또 밤샘. 아마 새벽 6시쯤 잠들었을 거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이틀째, 매번 알람은 아침 10시 반부터 11시까지 반복해서 울리도록 맞춰 놓는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오후 1-2시다. 오후 4시 반에 일어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긴 하지만, 오전 중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으므로ㅡ그리고 여전히 밤을 꼬박 새고 동이 튼 후에야 잠들고 있으므로ㅡ 극단의 조치는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조만간 두 번째 극약처방을 취해야 한다. 적어도 오전 10-11시 경에는 눈을 떠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알람은 10시 반에 맞춰 놓았으나 결국 눈을 뜨니 오후 2시였다. 바로 정신 차리고 3시에만 집에서 나왔어도 괜찮았을 것을 4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고, 결국 김환기 미술관에 폐관 30분 전인 5시 반에 겨우 도착하여 30분만에 김환기 탄생 100주년 전시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초스피드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른 날 갈까 싶기도 했지만, 좀 급하게라도 오늘 꼭 전시회를 갔다 와야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리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아서 무리하면서까지 달려가 입장 마감됐다는 환기미술관 직원에게 아직 5시 28분이라며 폐관 30분 전까지는 입장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대사를 침으로써 미술관 입장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내가 2시에 일어나고도 왜 4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나. 눈을 뜨고도 한동안 일어나기 싫어서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있어서? TV 보고 놀다가? 아니다. 이 모든 건 망할 놈의 택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온라인 쇼핑의 폐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온라인을 통해 쇼핑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택배 기사들에게 농락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농락이라니, 대한민국 택배 기사 조합에서 들으면 강하게 반발할 지도 모르지만, 온라인 샵에서 물건을 주문한 후 택배를 기다려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늘 중으로 물품을 배달할 예정입니다'라는 택배 기사의 문자를 받게 되면 하루종일 집을 비우지 못하고 볼 일이 있어도 택배 오면 받아놓고 나가야지 라는 판단 미스를 범함으로써, 결국 그날 하루를 통째로 택배 기사 아저씨의 스케줄에 의해 날려먹고 내 스케줄은 농락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냥 일반 택배라면 세탁기 뒤 계단 아래에 두고 가세요- 라고 하면 되겠지만, 그 택배 물건이 크고 값 나가는 것일수록 직접 받아야 마음이 놓이고, 오늘 같은 경우는 그냥 택배가 아니라 정확히는 반품을 가지러 오는 거였다. 파리 가기 전에 주문했던 전기 주전자의 하단 부분이 수평이 맞지 않아 교환 신청을 했는데 업체배송 상품이라 바로 교환이 불가능하고 일단 상품을 반품하면 업체에서 상품 상태를 확인한 후 새 상품으로 보내주겠단다. 내가 반품 요청을 한 게 4월 3일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게 지난 오늘에서야 반품을 가지러 택배기사가 방문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열은 받을 대로 받은 상태였고 (중간에 예스24 고객센터에 일대일 문의도 남겼다. 그러고도 3일 후에서야 반품 택배 기사가 방문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벌써 주문한 지 2주일이 넘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든 빨리 반품을 완료해야 새 상품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택배 기사분께 반품 물건을 전달해야 하니까. 그리하여 나는 오늘 낮 12시 경에 도착한 '오늘 반품 예정입니다'라는 현대택배의 문자 한통에 농락당해 오후 4시까지 택백 기사의 방문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냥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 2시에 기상한 후 문자를 확인하자 마자 문자를 보내온 현대택배의 기사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여러 번 했다. 몇시쯤 방문할 예정이냐고 묻기 위해. 근데 몇번이나 전화를 해도 망할 놈의 택배 기사님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4시가 되고 만 것이다.
4시 10분에서야 겨우 통화가 된 기사님은 오후 6-7시쯤에나 우리집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집 방문이 거의 제일 마지막이라고 했다. 진작 전화 받았으면 차라리 빨리 나갔다 왔을 거잖아. 죽고 싶냐. 온갖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택배 기사는 참으로 쿨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냥 세탁기 뒤에 두고 가세요."
첫째, 반품 수거는 반드시 내가 직접 택배 기사에게 물건을 전달해야 하는 줄 알았다. 둘째, 꼭 그렇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혹시나 물건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어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근데 그냥 그러면 되는 거였다. 결국 난 오늘도 택배 기사에게 농락 당하여 삽질을 했고, 그때부터 미친듯이 화장하고 뛰쳐나가 환기미술관 폐관 30분 전에 겨우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웬만하면 온라인 쇼핑 하지 말고 그냥 직접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플 무선키보드의 파우치만 해도, 당장 필요하니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또 택배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서 바로 사고 싶은데, 온라인에서 봐둔 그 어떤 파우치도 ㅡ종류가 많진 않았다ㅡ 오프라인 매장에 재고를 갖고 있다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주문 시 뭐시기 뭐시기 할인쿠폰들도 쓸 수 있어 3,000원 이상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명동 프리스비, 텐바이텐 명동점 등에 재고 문의 했다가 없다는 답변을 들은 후 결국 포기하고 텐바이텐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또 택배를 기다려야 한다. 지겨운 택배 택배 택배. 온라인 쇼핑과 택배 기사의 농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들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은 거의 없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샵에서 주문해야 하는 경우가 계속 늘어만 가니, 택배 지옥에서 벗어날 가망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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