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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GUE/France

Paris - 걷는 이를 위한 도시

pencilk 2013. 5. 23. 07:00

March 23. 2013


파리는 걷는 자들을 위한 도시다. 스물한 살 대학생 시절 떠난 배낭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처음 만난 파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가이드북을 꼼꼼히 예습하고 일행들과 함께 10장짜리 까르네를 나누어 가졌지만, 결국 지하철을 타기보단 걸어서 이동한 적이 더 많아 까르네는 남아서 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겨우 사흘, 아니 정확히는 이틀하고 몇 시간, 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파리는 걷기만 해도 충분한 도시였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또 항상 그리워하는 파리의 이미지는, 첫 유럽 배낭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파리에서의 둘째 날 일행들과 헤어져 처음으로 혼자 걸었던, 조용하고 또 아름다운 도시다. 그 기억 때문에, 나는 늘 파리로의 여행을 꿈꾸고 파리를 그리워해왔다. 일상에 지쳐 낯선 곳에서 걷고 싶어질 때면 항상 파리부터 떠올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걷기에 불편함이 없고 걷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 노트르담에서부터 센 강을 따라 걷다 보면 퐁네프가, 퐁데자르가, 루브르가, 튈르리 정원과 콩코드 광장이, 그리고 샹젤리제와 개선문이 이어지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도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아닌 도시의 풍경이 치유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도시가 파리였다.



두 번째로 파리에 방문했을 때부터 나는 헤맬 확률이 좀 더 낮은 지하철을 과감히 버리고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타고 가다가 언제든 내려서 걷기 위해서였다. 지하철에 비해 버스 노선도는 가이드북에 자세히 나오지도 않고 환승 경로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파리 시내버스 홈페이지에서 버스 노선도 PDF 파일을 다운 받아서 아이패드와 아이폰에 넣고 다녔지만, 안내 전광판이 잘못 나오거나 정류장 이름이 비슷해서,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 먼저 혹은 뒤늦게 내린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내가 다운 받은 노선도 파일에는 모든 정류장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정류장에 잘못 내리면 그만큼 더 걸으면 될 터였다. 게다가 나에게는 파리의 웬만한 곳은 걸어서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마저 있었다. 그 자신감 때문에 이번 여행의 첫날부터 나는 버스를 잘못 타고 말았다.



숙소로 정한 키리야드 베르시 빌리지(Kyriad Bercy Village)는 3년 전에도 묵었던 곳이었고, 호텔 앞에서 24번 버스를 타면 노트르담에 갈 수 있다는 알고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지하철도 아닌 버스에 '어디어디 행'이 있었던 거다. 알고 보니 내가 탄 버스는 노선도의 중간 정도까지만 가는 버스였고, 결국 노트르담을 세네 정거장 남겨두고 종점이라며 내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방심은 고생을 부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늙으면 힘들긴 하다. (끙)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15분 가까운 시간 동안 조금은 황망한 기분으로 파리의 아침 풍경을 바라봤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지만 가끔씩 조깅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아침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파리 시내 곳곳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걷기 좋은 도시이니 만큼 달리기에도 좋을 것이다. 관광객들 사이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뛰고 있는 파리지앵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저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싫겠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사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여행지에 갔을 때 관광객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관광객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노트르담이 보이면, 파리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곤 했다.

파리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숙소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노트르담 앞에 내려서부터 시작되곤 했으니까.




이걸 밟으면 반드시 다시 파리에 온다지. 파리 여행 첫날부터 꾹꾹 밟아주고.









노트르담 내부에는 플래시 금지 문구가 여기저기 적혀 있는데도 끊임없이 플래시가 터진다. 하지만 아무도 제재하는 이는 없다.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그 찰나의 빛의 터뜨림이 이 성당 안의 고요를 깨트릴 정도의 것은 아니기에, 이내 그러려니 한다.









노트르담을 나와 거리를 걷는다.



센 강도 보이고, 퐁네프도 보이고.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판대들도 보인다.




걷다 보니 곳곳에 작은 갤러리가 많은 길이 나왔는데 생 제르맹 데 프레 아트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