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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GUE/France

Paris - 에펠탑, 백조의 작은 길, 팔레 드 도쿄

pencilk 2013. 6. 3. 05:56

March 23. 2013


2002년 7월, 2010년 9월에 이어 세 번째 찾은 파리. 

결국 두 번째는 건너뛰고 2013년 3월의 파리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상하게도 2010년에는 파리가 마치 오랜만에 찾은, 어릴 적 살던 동네 같았다. 지도 같은 건 볼 필요가 없는, 그냥 대충 기억나는 대로 혹은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면, 그 사이 아무리 많은 것이 변했다 할 지라도 금세 내가 아는 건물이나 길이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익숙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겨우 두 번째 방문, 그것도 처음 갔을 때 머물렀던 시간은 이틀하고 몇 시간 남짓이 다였다. 게다가 그것은 무려 8년 전의 일이었으니, 파리를 얘기하면서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같은 도시라는 드립은 물론 말도 안 되는 개드립이다.


그런데, 실제로 2010년의 파리는 내게 그랬다. 매일 아침 24번 버스를 타고 노트르담 앞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하루종일 지도를 거의 꺼내보지 않았다. 센강을 따라 걷다 보면 익숙한 다리들이 나오고, 금세 루브르가, 오르세가 나올 테니까. 8년 전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인 그 모든 길들이 크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나는 파리가 너무 익숙했다. 그때는 이번 여행 때처럼 날씨가 춥지도 않고 걷기 딱 좋은 늦여름이었기에, 말 그대로 별다른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저 매일 아침 24번 버스를 타고 노트르담 앞에서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10년에 나는 몽마르트르도, 생 마르탱 운하도, 몽파르나스도, 라 데팡스도 가지 못하고 노트르담과 센강 주변만 돌아다녔다. 에펠탑은 오르기는 커녕 사진도 찍지 못했고, 로댕 미술관에서 샹젤리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을 통해 잠깐 본 것이 다였다. 그래도 파리에서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에펠탑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돌아왔다는 걸 깨닫고 나니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갔다. 에펠탑.

물론 올라가지는 않았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풍경이 예쁘다고는 하지만 에펠탑이 빠진 파리의 풍경은 역시 아쉬우니까. 무엇보다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 추워서 구멍 숭숭 뚫린 탑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펠탑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게 낮은 노트르담 전망대에 오르는 줄을 기다린 것만으로도, 나는 2001년 2월 27일 H.O.T. 마지막 콘서트 때 느꼈던 내 일생 최고의 추위의 뒤를 잇는 무시무시한 추위로 덜덜 떨어야 했으니까.



아무튼 이번에는 이렇게 엽서에 나올 법한 에펠탑 모습도 찍긴 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더 원대했는데 반도 하지 못했다. 샹 드 마르스 공원에서 본 에펠탑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는데, 여러번 시도했으나 매번 날씨, 샹젤리제 시위, 추위, 피로 등의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결국 샹 드 마르스 공원에 가지를 못했다. 그리고 역시 추위로 인해 밤에 사이키 조명 켜진 에펠탑도 못 봤다. 나이트처럼 번쩍번쩍 하는 에펠탑 되게 웃긴데, 생각해보니 아쉽군. 쩝.




에펠탑을 지나 비르아켐 다리(Pont de Bir-Hakeim)에서 그르넬 다리(Pont de Grenelle)에 이르는 작은 산책길, 

백조의 작은 길(Allee des Cygnes)로 향했다. 



앞서 두 번의 파리여행에도 불구하고 이런 산책로가 있다는 건 이번 여행 때 처음 알았다.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길이어서인지 확실히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했다. 성수기가 아니라 마음을 놓았던 것과 달리 의외로 어딜 가나 관광객들이 넘쳐나서 지쳐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는 느낌이었달까.




잠시 벤치에 앉아 센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여유로웠던 시간이었으리라.



그러고 앉아 있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거긴 몇 시?

오후 두 시 반. 산책하다 센강변 벤치에 앉아 있어. 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내 스스로 생각해도 X나 허세다. ㅋㅋㅋㅋ

파리 르몽드!! 라도 외쳐야 할 것 같다며 친구랑 낄낄거리며 대화를 하고 있으니 여기가 파리인지 서울인지 싶었다.







백조의 작은 길의 끄트머리, 그르넬 다리에 다다를 무렵이면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뉴욕에 있는 실제 자유의 여신상의 7분의 1 크기라고. 



그냥 산책하고 있을 때는 관광객인지 파리지앵인지 분간이 가지 않던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느냐 찍지 않느냐로 확연히 갈라진다. (물론 파리지앵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내 사진 같은 건 찍지 않고, 그저 이 앞에서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미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이런 사진 하나를 찍고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걸음 걷다 말고 흘끗 돌아본 풍경.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힘들게 한 팔 들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좀 외로워 보였다. 흠.



그르넬 다리에서 버스를 타고 샤갈전을 보기 위해 뤽상부르 공원으로 갔다. 이번 여행이 본격 파리 미술관 투어 여행이 된 건 샤갈전의 영향이 컸다. 여행 기간 중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열리는 샤갈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그 외에도 온갖 파리의 미술관들에서 어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지 알아보다 보니 어느 새 엄청난 양의 전시회 및 갤러리 정보가 엑셀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 성격 어딜 안 가지.) 하지만 뤽상부르 미술관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 일단 뒤에 줄을 서서 한 10분 기다리다가 문득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 거지 평일에 다시 오면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지금 가도 볼 수 있는 저녁 늦게까지 오픈하는 미술관들을 떠올렸다. 샤갈전 줄을 더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게까지 여는 시립근대미술관과 팔레 드 도쿄로 이동할 것이냐, 한 1분 고민하다가 팔레 드 도쿄 쪽으로 가는 버스가 뤽상부르 공원 근처에 있길래 그냥 과감히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무슨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건물 벽면에 무언가가 쓰어져 있다. 랭보의 시다.

Le Bateau Ivre.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불어였지만 아는 불어라고는 쥬땜므 꼬망딸레부 밖에 없어서 검색해보니 

그의 대표작인 '취한 배'라는 시였다.








팔레 드 도쿄가 있는 트로카데로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앞에 서고 보니 뭔가 관광지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성당이나 교회인 듯한데, 뭔지 찾아보기 귀찮아서 당시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생 쉘피스 성당이었다.




성당 앞 광장에 누군가가 나뭇가지들을 모아 사슴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파리시립근대미술관 & 팔레 드 도쿄.

왼쪽이 파리시립근대미술관, 오른쪽이 팔레 드 도쿄다.



두 미술관 사이의 공간에서는 파리의 젊은이들이 스케이드 보드를 탄다. 왜 하필 거기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젊은이들은 굳이 거기서, 보드를 탄다.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의 사이에서 타는 스케이드 보드라.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멋진 조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립근대미술관 먼저.





모딜리아니.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이 늘 그렇듯, 접근하기는 쉬우나 이해하기는 힘든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순수하게 아름다워서 감동하게 되는 작품도 있고, 해괴망측해서 이게 뭐지 싶은 작품도 있고, 어째서 이것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작품도 있다.




나다.

거울로 된 벽면과 조명이 가득한 방에서 찍은 것.



호텔로 돌아가는 길, 불 켜진 노트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