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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본문
M : 사랑에...자주 빠지곤 해?
A : 그래, 쉽게 빠져.
M :그럴 줄 알았어.
A :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오래 가.
난 떠났을 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사랑은 오래 된 언덕과 같아서 닳아지기 마련이야.
욕망은 극복하기 힘들어. 요즘은 돈도 많이 들어.
정열은 많은데 사소한 일로 낭비되지.
그건 사라지지 않아. 나도 그렇고.
알렉스에게는 언제나 처음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생에 있어서의 첫번째 사건들을 방 벽에 기록해두는 습관이 있다. 첫키스, 첫만남 등등. 그는 연인인 플로방스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도마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 세느강변에서 도마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하지만 결국 죽이지 못하고 강에 밀어버리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그리고 그 날 그는 벽에 '첫 살인 미수'라고 기록한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의 단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전화를 걸기 전에 혼자서 중얼거려보거나 공중전화 옆에 할 말을 써놓고 연습을 한다. 그렇게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연습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는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거나, 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떼어낸 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듣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너무나 낯설었다. 어쩌면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전의 영화들과 너무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장면장면이 중간에 삽입된 검은 화면으로 인해 끊어지고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과 '거리두기'를 한다. 파티장에서는 대사가 있는 주인공들 이외의 사람들은 어색할 정도로 움직임도 없이 뒤를 보고 서있다. 마지막 장면조차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알렉스는 죽은 걸까? 죽었다면 왜?
결국 마지막까지도 알렉스와 미레이유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공허함만을 느낀다. 알렉스의 전화를 미레이유는 베르나르의 전화로 알고 받지 않고, 알렉스가 찾아왔을 때도 그를 베르나르로 착각하고 "베르나르, 나는 이제 널 떠난다"라고 말한다. 언제나처럼 손목에 날카로운 가위를 갖다대고 있던 그녀가 가위를 배에 가져다댔을 때, 알렉스는 그것도 모르고 그녀를 뒤에서 세게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녀의 가운 위로 퍼지는 피. ㅡ어쩌면 흑백필름이여서 더 강렬한, 하얀 가운 위로 퍼지는 검은 피.
마지막까지도 두 사람의 의사소통은 단절되어 있고 서로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결국 미레이유를 격정적으로 사랑하던 알렉스는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알렉스도 죽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레오 까락스의 세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알렉스라는 남자주인공은 언제나 한 여자를 격정적으로 사랑하지만 그녀들은 그만큼의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똑같의 크기의 사랑은 결코 불가능한 것.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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