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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십사] 김미월, 『서울 동굴 가이드』 본문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울 동굴 가이드 라니, 어떤 은유가 들어가 있는 걸까, 서울이라는 동굴처럼 어둡고 습습한 도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설일까, 지레 여러 가지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에는 정말 말 그대로 '서울 동굴 가이드'가 등장합니다. 정확히는 '서울 동굴'의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이지요.
표제작인 『서울 동굴 가이드』 외에도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자 가슴 속 깊은 곳에 자기만의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그 상처들은 익숙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또한 구체적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상처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출합니다. 가상 세계의 롤 플레이 게임을 통해 현실의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게임 속 캐릭터에게 쏟아붓기도 하고, '동굴'과 같은 공간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들은 상처를 극복하지도,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화해하지도 못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처 받은 건 너뿐만 아니야, 그리고 그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하고 또 다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해서 니가 불행한 것은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상처 앞에서도 덤덤한 주인공들은 최근에 등장한 신인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있는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 누르는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그저 쿨하기만 한 소설들과는 다른, 피식 터지는 웃음 끝에 남는 아릿한 아픔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었습니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책방이십사> - '이 책에 꽂히다'
원문 : http://blog.yes24.com/document/785993
회사 도서팀 블로그용 글이라 이딴 문체에 조금 가식적이어도 이해 바람. -_-
+
1.
일자리는 많았으나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없어 보였다. 손톱 끝이 아려왔다. 그녀가 잘할 수 있이 없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그녀의 문제는, 도무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뭔가를 끊임없이 하긴 해야 한다는 데 생의 비극이 있다고 할까. 앞날이 창창한 이십 대 청춘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없다니.
2.
기환과 동갑인 작은아들은 학교에서 대주는 돈으로 사시를 준비하는 명문 법대생이었다. 기환보다 두 살 위인 큰아들은 최연소 입사 기록을 세운 대기업의 신입사원.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 때문에 새 아버지 앞에서 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화가 났다. 더 불쾌한 것은 죄책감까지 든다는 거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자신이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으므로 다시 화가 났다. 분노의 악순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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