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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십사] 김미월, 『서울 동굴 가이드』 본문

WRITING/YES24

[책방이십사] 김미월, 『서울 동굴 가이드』

pencilk 2008. 1. 27. 23:21

서울 동굴 가이드

김미월 저
문학과지성사 | 2007년 05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울 동굴 가이드 라니, 어떤 은유가 들어가 있는 걸까, 서울이라는 동굴처럼 어둡고 습습한 도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설일까, 지레 여러 가지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에는 정말 말 그대로 '서울 동굴 가이드'가 등장합니다. 정확히는 '서울 동굴'의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이지요.

표제작인 『서울 동굴 가이드』 외에도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자 가슴 속 깊은 곳에 자기만의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그 상처들은 익숙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또한 구체적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상처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출합니다. 가상 세계의 롤 플레이 게임을 통해 현실의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게임 속 캐릭터에게 쏟아붓기도 하고, '동굴'과 같은 공간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들은 상처를 극복하지도,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화해하지도 못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처 받은 건 너뿐만 아니야, 그리고 그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하고 또 다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해서 니가 불행한 것은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상처 앞에서도 덤덤한 주인공들은 최근에 등장한 신인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있는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 누르는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그저 쿨하기만 한 소설들과는 다른, 피식 터지는 웃음 끝에 남는 아릿한 아픔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었습니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책방이십사> - '이 책에 꽂히다'
원문 : http://blog.yes24.com/document/785993

회사 도서팀 블로그용 글이라 이딴 문체에 조금 가식적이어도 이해 바람. -_-



+
1.
일자리는 많았으나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없어 보였다. 손톱 끝이 아려왔다. 그녀가 잘할 수 있이 없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그녀의 문제는, 도무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뭔가를 끊임없이 하긴 해야 한다는 데 생의 비극이 있다고 할까. 앞날이 창창한 이십 대 청춘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없다니.

2.
기환과 동갑인 작은아들은 학교에서 대주는 돈으로 사시를 준비하는 명문 법대생이었다. 기환보다 두 살 위인 큰아들은 최연소 입사 기록을 세운 대기업의 신입사원.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 때문에 새 아버지 앞에서 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화가 났다. 더 불쾌한 것은 죄책감까지 든다는 거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자신이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으므로 다시 화가 났다. 분노의 악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