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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십사] 여름, 창가, 빗소리, 추억 그리고 이 책

pencilk 2009. 8. 6. 22:27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저
한겨레출판 | 2003년 08월


어린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나는 야구의 룰도 제대로 모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었다. 롯데는 삼미 슈퍼스타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90년대의 하위권을 주름잡은(?) 만만치 않은 팀이었다. 그랬기에 여느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야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조차 92년도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할 정도로, 롯데가 우승하던 해의 부산 시민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광했다. 그들은 '롯데가 우승한 해'와 '눈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산에 눈이 쌓인 해'를 "내가 몇 학년 때였지"라고 기억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아마추어를 사랑한 적이 있는 모든 이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랫동안, 또 순수하게,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아마추어를 사랑한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박민규의 말대로 나는 '이 프로의 세상에서 아마추어를 사랑한 죄로 멸시와 조롱을 받았'던 것이다.

이 책은 내게 그 시간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의 끄트머리에서 박민규는 말한다. 그건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이었다고, 삼진아웃이 아닌 투 스트라이크 포 볼이니 1루로 나가서 쉬라고. 그것은 이제부터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다고 말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과거에 좋은 일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억에 시간이 덧입혀졌기 때문이듯, 내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서툴고 힘들었던 '기억'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여유를 준 책이다.




YES24 도서팀 블로그 <책방이십사> - '테마책방'
원문 : http://blog.yes24.com/document/1522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