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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리뷰]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pencilk 2009. 7. 1. 23:38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저
은행나무 | 2009년 04월


잊고 있었던 '나'라는 녀석과의 대면

사람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순간은 과연, 생의 몇 퍼센트나 될까?
말을 바꿔 보자. 한 사람이 자신의 생에서 오롯이 '그 자신'일 수 있는 순간은 몇 시간, 몇 분 몇 초나 될까? 더 나아가, 그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끽할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농담』에서 밀란 쿤데라는 실재(實在)하는 '나'보다도 더 현실성 있고 영향력 있는 '이미지'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그 '이미지'가 비록 '나'를 닮지 않았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그 이미지로 바라보는 한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쿤데라는, 진짜 나와 나의 이미지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말한다.

여기, 그 무거운 짐에 짓눌려 주저앉으려 했던 한 남자와, 그 짐을 짊어지고서라도 끝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 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들은 '수리 희망병원'이라는, 마치 씁쓸한 농담 같은 이름을 지닌 정신병원에 입원 '당함'으로써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얻고 만다. 정신병원이라는 기관이 그 곳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부여하는 역할은 쿤데라가 『농담』에서 말한 '이미지'와 닮아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상 그들은 '정신병자'이고,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저 그렇게 정신병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주저앉아 일어설 힘조차도 없었던ㅡ아니,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ㅡ 남자, 이수명.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이 원하는 인간상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태도야말로 '사회생활 제대로 하는' 성인(成人)의 자세가 아닌가. 반면 부당한 짐을 짊어지게 된 것에 대해 온갖 불만을 토해내며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무언가를 박살내고야 마는,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남자 류승민은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꼴통'이다. 수리 희망병원이라는 작은 사회 내에서 승민은 가장 골 때리는 요주의 인물이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승민을 바라보는 수명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미친 놈,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수명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승민이 그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현실의 상징이라면 승민은 희망의 상징이다. 현실 속 우리의 모습에 가까운 수명에게 편안함을 느끼던 독자들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승민이 탈출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또 수명처럼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작가는 승민의 입을 통해 날카롭게 묻는다.

넌 누구냐?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끊임 없이 도망치기만 하던 수명에게 승민이 던진 그 한마디는 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읽는 이의 가슴에 박힌다. 다른 어떤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거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미지에 끼워 맞춘 내가 아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나. 그 '나'를 찾으라고, 작가는 말한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유정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 심장을 쏴라』를 내놓았다. 간단하게 말해 이 소설은 두 남자의 정신병원 탈출기를 그린 휴먼드라마다. 간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작가는 그 동안의 경험과 꼼꼼한 취재를 통해 살아있는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보다 현실감 있는 정신병원의 풍경을 그려냈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내 심장을 쏴라』가 음울한 분위기의 소설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좌충우돌 저마다의 존재를 드러내는 전반부의 분위기는 오히려 경쾌함에 가깝고, 곳곳에 배치된 블랙유머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을 흘리게 한다. 그리고 그 버석거리는 웃음의 여운이 서서히 따끔거리는 잔재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파는 후반부에 접어 들면, 이 작품이 왜 제5회 세계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몇 번의 탈출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끝나도 여유를 잃지 않던 승민이 시력을 잃으면서 이야기는 급속도로 굴절된다. 탈출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모두들 이제 승민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도 승민은 마지막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병원을 벗어나 빼앗긴 유산과 재벌 아들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그런 대단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히말라야가 되든, 동네 언덕이 되든 그는 상관 없었다. 다시 한번만 더 날아 보는 것, 그리고 하늘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나'로 숨 쉬는 것, 그가 바란 것은 그저 '온전한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반면 수명은 자신에게는 도망쳐서 도달해야 할 만큼 절실한 세상이 없다며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수명의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저 유령이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고, 있기는 하냐고 묻는 승민에게 그는 그런 거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승민으로 인해 수명도 서서히 변해간다. 언제나 승민의 탈출을 도와주었을 뿐 스스로가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던 수명이 보트 운전대를 잡고 호수를 질주하면서 자신이 떠나온 세상을 향해 다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순간에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회피해왔던 과거의 기억 앞에 마주 섬으로써 '진짜 자신'과 대면한 수명을 보면서, 나는 참 가슴이 아팠다.

명중이다. 다른 사람 일은 이것저것 도와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명을 향해 작가가 겨눈 총구, 그것은 정확히 우리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수명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병에 걸려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저 나일 수만은 없게 하는 세상의 수많은 총구들, 그 앞에 가슴을 펴고 서서 '내 심장을 쏘라'고 소리칠 용기가 과연 나에게는 있을까. 매 순간 세상을 향해 심장을 내밀고, 누가 뭐라고 하든 유아독존으로 그저 '나'만을 주장하며 살아가고자 함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나'라는 녀석과 만나기 위해서다. 어쩌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녀석이어서, 혹은 너무 오랫동안 숨겨온 탓에 그 존재조차도 희미해져 버린 '나'라는 녀석. 그와 대면하고 또 화해를 청할 수 있는 것 역시 바로 나 자신뿐이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녀석, 바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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