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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닥치고 정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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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닥치고 정치』

pencilk 2011. 11. 1. 22:53
닥치고 정치
저자 : 김어준
출판 : 푸른숲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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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 _ 이명박에 대해 사람들이 몰랐던 건 아니잖아. '전과 14범이고,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것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았잖아.(웃음) 노무현 정권이 권위주의를 청산했다든지 하는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명박을 택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김 _ 자기 욕망에 투표한 거지. 이명박이라고 하는 인물에 투표한 게 아니라 자기들 자신의 욕망에 투표한 거지.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된 거 아냐. 민주, 이런 단어 촌스럽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절이 됐고. 뭐 완전 착각이었지만.(웃음) 노무현 시절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더 이상 정치권력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아무나 대놓고 대통령 욕할 수 있었고, 그러니까 이제 정치는 서비스나 잘해라, 그렇게 넘어가는 단계였지. 그래서 이명박의 정체가 뭐든 나한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표를 줄 준비가 된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준비를 바로 노무현이 해준 거지. 역사는 오묘하지.(웃음) 할 수 없어. 역사는 그렇게 진퇴를 거듭하는 생태계니까.


2.
지 _ 그럼 진보 진영은 어떻게 변화해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야?

김 _ 우선 짚을 것이, 자신들이 설득할 대상과 가장 먼 언어로 말하는 이들이 진보 정당 사람들이라는 거. 계급을 말하면서 시장통 아줌마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키워드로 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나는 봐. 진보 정당이 구사하는 언어는 이미 자기들이 설득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알아먹는 언어라고.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건 나 역시 천만 번 동의하는데, 상대가 알아먹어야 메시지인 거지. 상대는 못 알아먹는데 어떻게 메시지냐고. 혼잣말이지. 정치를 혼잣말로 하면 어떡해.
진보 정당이 주장해온 정책들 대부분 훌륭해. 세부적인 디테일이야 재원 조달의 문제부터 또 따로 따져봐야겠지만 그 방향성은 항상 훌륭했어. 그런데 진보 정당은 자기들의 언어를 직접적인 수혜 대상자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방식으로 전달해본 적이 거의 없어. 그사이 실제로 그들이 대변해야 할 계급은 오히려 이명박의 언어에 반응해 이명박을 지지해버리고.
그게 언론을 장악하고 그 언론을 통해 프레임을 선점하고 그 프레임을 통해 언어를 장악한 보수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절반만 맞는 말이야. 진보 정당에 부재한 대중언어의 문제는 그렇게 우 편향 지배의 메시지 유통 구조, 그 이전의 문제라고. 진보 진영 자신의 문제야. 이 문제는 단순히 언어에서 끝나지 않아. 태도의 문제로 바로 연결돼. 정치는 기본적으로 연애인데,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데, 연애를 하려면 당연히 내가 누구인지부터 제대로 알려야 하잖아.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그러다 점점 서로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데. 그런데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웃음)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웃음)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충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웃음)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웃음)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웃음)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웃음)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웃음)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웃음)


3.
지 _ 안철수, 박경철이 전국 강연을 다니잖아. 현실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좋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읽히던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 있어?

김 _ 그 양반들과 대선은 상관없지. 그 양반들을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이런 이유라고 봐. 난 이명박이 역사적으로 굉장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어찌나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지, 정치에 전혀 관심 없던 일반인들까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자각하게 해준 공로를 따로 기록해서 역사에 길이 남겨야 마땅하다고 봐.(웃음) 난 이명박 퇴임 후에는 동상 세워줘야 한다고 봐.(웃음)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안티히어로로.(웃음)
일이 그 지경이 되다 보니까 안철수, 박경철 정도 되는 인물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와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열망이 생기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아주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안철수 정도 되는 인물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만 하면 기존 정치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날 거야. 지금 정치인들은 이명박으로 인해 대중들이 느끼는 이 거대한 결핍의 정체를 전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 그건 정말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되겠지.


4.
지 _ 정치는 어차피 이미지 전쟁인 측면이 있는 거잖아.

김 _ 물론. 박정희는 종교의 영역에 들어갔어. 신화가 됐다고. 노무현도 이제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당분간, 적어도 10년 이상은, 그 두 망자의 대결이 펼쳐진다. 신화의 대결이 된다고. 여기에 독재고 뭐고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 중요한 건 그 신화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걸 정확하게 포착하는 거다. 기억엔 상징만 남으니까.


5.
하지만 오바마가 천국을 도래시키지 못했듯, 노무현으로 천국이 오지 않았듯, 문재인으로도 천국은 오지 않는다니까. 맞다. 인간 세계에 천국은 없다. 하지만 노무현이 없었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다. 노무현으로 인해 되돌아갈 지점을 알게 된 것처럼, 문재인은 또 다른 기준이 된다. 역사는 그런 거다. 그런 기준을 가져보느냐, 못 가져보느냐.

 

+
알겠다. 사람들이 이래서 김어준에 열광하는구나.
솔직히 육성으로 욕이 난무하거나 과한 음모론과 비아냥이 판치는 (특히 남자들이 열광하는) 분위기는 견디기가 힘들어
초기 딴지일보도, 디씨갤도, 부정적으로 보고 피해 왔다.
욕할 만한 상대를 욕하는 것까진 좋은데, 그게 집단화되면서 우린 다수니까 괜찮아-로 흘러가며
개나소나 다 까도 되는 줄 알고 쥐뿔도 모르면서 까고 다니던 한심한 남자새끼들을 많이 봐서.

책이니까 어느 정도 정제됐겠지, 하고 그동안의 반감을 내려놓고 읽었다.
역시. 좋아할 만하네.
이 정도의 지식과 판단력과 유머감각이면, 까도 된다.
깔 만한 상대를 깔 만한 팩트와 논리와 추리력을 갖고서 까는 거니까.
가카나 한나라당 까는 거야 그렇다 치고, 진보 정당이나 민주당에 대해 쓴소리 한 부분들이 특히 와 닿았다.
무조건 MB만 깠다면 이 정도로 책에 빠져들진 못했겠지.

이 책이 여러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1위라는 사실에 대해, 가카와 한나라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