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
- Total
pencilk
은희경, 『태연한 인생』 본문
![]() |
|
언제부터인가 까페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광장에 모이지도 밀실에 숨어들지도 않았다. 남의 집을 방문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는 쾌적했으며 먹고 마실 것이 준비돼 있었고 참견하는 사람도 없었다. 집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들끼리 용건 없이 만나 가벼운 개인사를 공유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데이트하는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각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의 앱을 뒤적였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애인을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혼자 있다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공부를 하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든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와 달라서 분명 혼자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독립적이었다. 심심할 수는 있지만 고독해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각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스 안에 들어가서 비용을 지불하고 그 댓가로 고독에 대한 통각을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89
+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 걸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은 후부터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은희경이라는 이름을 말해왔다. 좋아하는 작가의 범주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무조건 다 좋았을 리는 없다. <비밀과 거짓말>을 읽고는 한동안 은희경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다가, 몇년 후 발표한 <아름다운 것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는 내가 좋아하던 작가 은희경이 돌아온 것 같아 안도했다. 트위터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그녀의 수다와 연이어 출간된 <소년을 위로해줘>의 가벼움에 꽤나 큰 실망이란 걸 했었고, 곧이어 출간한 에세이집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그저 그녀가 제발 트위터 좀 그만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태연한 인생>. 다행히 그동안 트위터하고 사람들 만나고 술 마시고 논 보람이 없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과, '좋아하는'의 범주에 들어온 무언가에게 회복 불가능할 만큼 연달아 실망하지는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안도. 앞으로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어설프게 흉내내거나 허세 부리거나 어리광 부리지 말고, 자기 글을 썼으면.
'THINKING > 책,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vs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0) | 2012.07.28 |
---|---|
백영옥,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0) | 2012.07.21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한 남자』 (0) | 2012.05.20 |
김연수, 『7번 국도 Revisited』 (0) | 2012.03.27 |
박정석, 『열대식당』 (0) | 201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