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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vs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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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느낌의 여행 에세이 둘. 『당신에게, 여행』 vs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결과는 『당신에게, 여행』의 완승.
제목 선정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쪽의 승이겠으나ㅡ그래서 판매량도 훨씬 더 높은 것 같지만ㅡ, 내용 면에서나 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당신에게, 여행』의 완승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의 경우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기 위한 에세이가 아니라는 면을 감안하더라도, 책 대부분을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연애 에피소드에 할애하고 있으면서 (당연히 전후사정 설명은 없이 연애하는 동안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장소별로 묘사해놓았다) 글 옆에 실려 있는 사진들이 글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어서 어리둥절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이병률이 풀어놓은 에피소드들이 다 너무 개인적인 자신의 연애사가 대부분이라 헤어지는 연인의 뒷모습 사진 같은 것들을 책에 실을 수는 없었겠지만, 낡아빠진 운동화라든가 자신이 몇달간 머무르며 일했다던 식당의 사진이라든가 그 정도는 넣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적어도 그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기로 결정했다면 말이다. 하다못해 진짜 그 순간에 찍은 사진을 그대로 싣지는 않을지라도 추후에 책을 위해 설정이라도 해서 찍는 성의는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불친절할 정도로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그저 저자의 연애 감정과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한 허세 섞인 문장들이 대부분인 이 책에서, 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아름다운 장면이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조차 옆에 있는 사진이 글과 전혀 상관없는 장면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사진따위 어떻든 상관없을 정도로 문장이 그리 훌륭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에 비하면 『당신에게, 여행』은 사진이 참 좋다.
장소 선정도 탁월하고. 책에 나온 모든 장소들을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문장도 담백하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감성 과잉으로 오그라드는 허세 문장들에 비하면 얼마나 담백하고 간결한지.
피렌체 다녀와서 날씨 좀 선선해지면 『당신에게, 여행』에 소개된 곳들을 하나씩 가보고 싶다.
한가지 아쉬운 건 책에 소개된 곳들이 대부분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곳들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더,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어?'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더라.
이 책을 읽으면서 거의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운전면허를 따려면...
그냥 차 있는 남친 생기면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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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면 어떨까요. 모두를 던지는 거예요.
그 다음은 그 이후의 모두를 단단히 잠그는 거예요.
삿포로에 갈까요. 멍을 덮으러, 열을 덮으러 삿포로에 가서 쏟아지는 눈밭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술을 마시러 갈 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전나무에서 떨어지는 눈폭탄도 맞으면서요.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만 가다가 조금만 환해지는 거예요.
하루에 일 미터씩 눈이 내리고 천 일 동안 천 미터의 눈이 쌓여도 우리는 가만히 부둥켜안고 있을까요.
미끄러지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 날에만 바깥으로 나가요. 하고 싶은 것들을 묶어두면 안 되겠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망한 것을 사과할 일도 없으며,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의심도 서로 없겠죠.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당신의 많은 부분들. 한숨을 내쉬지 않고는 열거할 수 없는 당신의 소중한 부분들까지도. 당신은 단 하나인데 나는 여럿이어서, 당신은 죄가 없고 나는 죄가 여럿인 것까지도 눈 속에 단단히 파묻고 오겠습니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2.
언젠가 다시 가야 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여행은 직진하는 것도 아니고, 백 미터 달리기처럼 백 미터를 다 왔다고 멈춰 서는 것도 아니라서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때까지 내게 아무도,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오래 그리워했던 것을 찾아 나서기에는 언제나처럼 혼자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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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 하루키가 이렇게 말했었지. 아르마니 정장에 재규어를 몰고 다녀도 결국 개미와 다를 바 없다고. 일하고 또 일하다가 의미도 없이 죽는 거지. 때로는 이렇게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을 나무와 나비, 바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2.
나는 풍경이 사람을 위로해 준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나 누군가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을 다쳤을 때, 우리를 위로하는 건 풍경이다. 힘들고 지쳤을 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풍경이 지닌 이런 힘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일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3.
기차가 서지 않는 오래된 역의 벤치에 앉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하지 않을까. 겨우 세월을 탓하고 추억이나 곱씹을 수밖에.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고맙고 소중한 일일 줄이야. 간이역이 아니라면 언제 우리가 그런 시간을 마음 놓고 가질 수 있겠는가. 추억이란 어쩌면 간이역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쓸모 없는 것들, 왜 빨리 사라져주지 않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 가을 햇빛 속의 함백역은 추억처럼 찬란하다.
4.
옅은 벚꽃 그림자가 발등에 어룽대는데, 그 풍경에 문득 마음이 맑아지고 환해진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벚꽃 그림자에도 위로를 받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런 게 여행이 주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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