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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수난의 주말

pencilk 2014. 4. 13. 22:37

금요일 아침 scrum 회의를 하는 순간부터 열 받기 시작해서 오후에 정점을 찍고, 거의 야근할 뻔하다 야근을 하게 되면 같이 저녁 먹고 말 섞어야 할 사람들 꼴 보기가 싫어서 다들 저녁 먹으러 간 사이에 퇴근해 버렸다. 그러고 주말 내내 체해서 개고생. 그렇게 많이 스트레스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토요일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머리 아프기 시작해서 그날 먹은 거 다 토하고, 저녁 약속에 거의 기어나가다시피 한 후 바깥 바람 좀 쐬니 나아졌다 했지만 오늘 아침에 괜찮아진 줄 알고 먹은 것 또 다 토했다. 더 이상 집에 약이 없어서 오후에 귀신같은 몰골로 약 사러 기어나갔는데, 약국에 가서 증상 얘기하니 약사 아줌마며 약국에 놀러와 있던 이름 모를 아줌마며 내 얼굴이 말이 아니라고 난리였다. 그러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강제로 약국 놀러온 근처 가게 아줌마 손에 끌려가 손가락 발가락 따서 피 빼내고 매실차도 얻어 마심. 비록 얻어마신 매실차가 너무 진해서 좀 부담스럽다 싶더니 결국 그마저도 (그 때 먹은 소화제와 함께) 전부 다 토해내고 말았지만. 그렇게 속을 다 비우고 약도 먹지 않고 뻗어 있었더니 이제 좀 안정이 되었다. 어제 오늘 이틀간 대체 몇 번을 토한 건지. 한 5-6번 토한 듯. 먹은 건 소화제 드링크 3병, 삶은 달걀 하나, 크로와상 하나뿐이구만. 덕분에 이틀 사이에 2kg이 빠졌더라. 네이버 입사하고 찐 살 거의 다 빠졌네. ㅋㅋ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살이라도 빠져서 좀 기쁘군...


아무튼 생판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혈색이 너무 안 좋다며 손가락도 따주고, 옆집 사는 언니라 생각하라며 6년 묵은 매실도 꺼내 주시고, 뭔가 참 어색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하고 그랬다. 혼자 살면서 젤 서러울 때가 아플 때이긴 하지만, 이제 혼자서 체하고 토하고 아파서 뒹굴고 한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아픈데 혼자라고 해서 딱히 서럽다고 느끼지도 않는데, 오늘 그 아주머니가 혼자 사냐고 묻더니 그러더라. 어머니가 이런 거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시겠냐고. 


뭐 아무튼. 아무리 아파서 거의 기다시피 약국에 가서 내 증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도, "원래 체하면 머리 아파요." 따위의 멘트나 하던 약사들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자기 딸처럼 걱정하며 혈색이 너무 안 좋다, 지금 약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손가락 좀 따야겠다, 발을 따뜻하게 해라, 매실을 좀 먹어라, 하던 우리동네 약사 아주머니와 밥집 아주머니를 보면서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산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어제 오늘 아파서 자다 깨다 뒹굴다를 반복하다 TV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별 것 아닌 말인데 오늘의 나에게는 은근히 뇌리에 박혔다. 그동안 혼자 사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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