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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상처와 흉터

pencilk 2019. 9. 6. 01:05
2014. 6. 21.

 

갑동이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믿은 너 자신을 탓하지 말기." 

 

내 인생에서 가장 방황했던 시기인 스무살 무렵 상처를 넘어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된 한 문장은 "난 그냥 누군가를 믿었을 뿐이다."였다. 스무살 때의 나는, 이 해답을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답을 찾았다. 

 

만약 그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었다면 내 모든 경계심과 마음 속 벽은 무너졌을 거고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다 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해준 이는 없었고, 나는 그 시간들을 오롯이 혼자서 지나오면서 인생사 혼자 가는 거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이런 나를 진짜 이해해줄 사람이 있긴 한 건가, 의 모드로 살아온 것 같다. 음, 결론적으로 극도의 방황의 시기에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삐뚤어진 건가. ㅋㅋ

 

하지만 다시 갑동이에 나온 대사를 인용하자면, "그런 게 상처라는 거"다. "그런 일을 겪고도 멀쩡하길 바라는 게 이상한" 거고.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가면 그게 어떻게 상처"겠는가.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지."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도 기억도 점점 흐릿해져 갔고, 그래서 이제 내게 그 시간들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스쳐가는 바람이 되었다고 느낀 적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무뎌지고 흐릿해졌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게 마련이듯이.

 

그리고 사람은 변한다. 벌어져서 피가 흐르던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듯, 상처가 흉터로 변해감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 갑동이의 김재희가 오마리아가 된 것처럼, 시간이 흘러 다시 같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권음미 작가가 인간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와 극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정말 완벽하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 된 내 상처에 대해, 핸드폰으로 이렇게 오글거리는 긴 글을 끼적이게 만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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