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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러운 사람 본문
끊임 없이 어른스러운 사람을 찾고 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그런 어른스럽고 강한 사람.
세상에 강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언젠가부터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나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의 '어떠함'으로 인해 나에게 행해졌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똑같은 패턴에 지독하게 질려버린 '그 때'부터였으리라. 나는 정말, ㅡ누가 들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ㅡ 질려버렸었다. 나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겉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만 보고 나에게 기대려드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어야 했던 그 때는,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었다. 정작 내가 힘들 때에도 아무한테도 못 기대고, 남의 고민 들어주고 있어야 했던 그 때의 나는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굉장히 재수 없어졌다. 한 때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했던 나였는데, 언젠가부터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속으로 코웃음치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니? 그건 사치야. ㅡ실제로도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애들이 당시엔 꽤 됐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절실했을 것이다.ㅡ 겉으로는 결코 티를 못 내면서, 속으로만 그렇게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너보다 더 힘들어, 나한테 기대지마-라고.
웃기는 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댔으면 됐을 텐데 나는 아무한테도 기대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은 나를 기대게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기보다는 내가 기대지 않은 탓이었을 거다. 그 때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내가 기대주기를 바랬던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 애는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강한가. 혼자 지레 판단하고,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거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상처를 스스로 헤집으면서, 거기에 위안을 받으려 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나는 이만큼의 상처가 있어, 그것을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표독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던 시간이 있었다. 나를 길들여놓고 결국은 또 떠날 거라면, 영원하지 못할 거라면, 아예 다가오지도 말라고 대놓고 말하던 재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가 친해진 사람에 대해서는 애써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발악도 했다. 조금만 자주 연락이 오면, 이제 자주 연락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었다. 특히 남자애들한테는 더 그랬다. 너 조금 있으면 군대 갈 거잖아-라면서. 너한테 이렇게 자주 연락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가 나중에 허전함을 느끼는 것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물론 그 애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그냥 흘려들었었지만, 나는 필사적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 일상 속에 끼어들었던 사람이 한 순간 사라져버렸을 때의 기분은, 정말 끔찍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꼬여버려서 도저히 풀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어떤 사슬에 꽁꽁 묶여있는 것만 같았다.
끊임 없이 어른스러운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은, 그 시간의 흔적일 거다. 이전처럼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사람이 아니면 피하려 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어른스럽고 듬직한 사람을 은연 중에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나는 기댈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 때에 비해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도 누그러 들었고 불안함도 줄어들었지만, 정말 그 시절에 대고 수십번도 더 '안녕 이제는 안녕'이라는 노래 가사를 빗대어가면 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온갖 발악을 다 해댔지만, 역시 '있었던' 기억은 결코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희미해졌다 해도, 말 그래도 '희미해'졌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 묻어두었을 뿐, 잊을 수는 없다는 것.
사랑하고 싶다.
한없이 어른스럽고 내가 기대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사람을.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아이 같아서 내가 감싸주고 싶은 그런 사람을. 평소엔 장난스럽고 가볍게 말하지만 언뜻 언뜻 비치는 말이나 표정 속에서 그 생각의 깊음이 드러나는 사람을. 성격상 절대 힘들다 말할 수 없을 나에게 '힘들지, 나한테 기대'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면서 말없이 어깨를 빌려줄 그런 사람을.
어디 그런 사람 없을까.
...이래서 나는 연애를 못 하는 건가?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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