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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aily Life

대학시절에 대한 모순적 상념들

pencilk 2003. 10. 26. 14:27

친구를 만나서 2학기 시작하고 나서 그 동안 어떻게 목숨 부지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대화의 초점이 겨울방학으로 넘어갔다. 우리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가 시작했다. 게다가 12월이면 내가 동아리에서 물러날 때가 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내 생활에서 dew가 빠지고 나면, 정말 시간이 많아질 거다. 동아리가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거의 2년간 나의 토요일과 월말을 꽁꽁 묶어두었던 동아리 활동이 사라진다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겨울방학 때 시간이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일본에 가고 싶다. 나도 가고 싶었어.
우리는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돈을 모아야 해. 지금부터 돈 모을 방법을 강구하자.
장학금 타는 게 최고야. 너무 가능성이 없잖아;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부산 가서 과외 몇 탕 뛰면 서울에 있는 거보단 훨씬 돈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그런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대학시절이라 한다는데, 그 시기에 돈을 버느라고 황금같은 방학 2달을 아무 것도 못한 채 보낸다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참 아이러니 하다. 어른들은 대학시절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며 잘 보내라고 하고 우리도 그런 생각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그 생각 하나로 열심히 놀고 열심히 여행하고 그러기에는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안 그러던 친구들도 고학번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들 현실로 돌아온다. 학점을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고 토익 점수를 안 올릴 수도 없고, 여행 한 번 가려면 돈을 안 모을 수가 없다.

대학시절 때밖에 못해보는 것들은 다 하고 졸업해야 한다-가 나의 기본 모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들이 나를 갈팡질팡하게 했었다. 장학금 유지에 대한 압박감으로 1학년 때 그런 강박관념이 가장 강했던 나는,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반대로 오히려 고학번이 될 수록 여유로워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1학년 때 내가 얼마나 조급해하며 살았길래 싶기도 하고, 그렇게 조급해하면서도 가장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1학년 시절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결코 나는 토익과 여행, 학점과 영화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공부나 현실을 외면하고 마냥 잘 놀기엔 너무 학년이 높아져버려서, 이제 어느 하나도 포기 못하겠다. 이러다 어느 하나 '제대로'는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도록 두 개 다에 매달려볼란다. 어느 하나에만 매달리기엔 내 대학시절이 너무 아깝다.


숨막히던 2학기의 중턱에서, 겨울방학에 대한 상념들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이렇게 단순한 게 사람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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