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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문
처음으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늘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는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아무튼 아침에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께만 보낸건 아버지는 문자를 볼 줄 모르시기 때문이다;) 그냥 짧게 결혼기념일 축하드린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온다. "고맙다 딸밖에 없다"
안타깝다. 이럴 때면 아버지께 전화해서 결혼기념일 좀 챙기시라고 잔소리라도 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22년을 살아오면서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는 것도 씁쓸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버지께 전화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어머니께 전화 드려서 말동무라도 되드리려 했다.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속 썩여드리고 맨날 싸우고 울고 그랬는데, 대학에 오고 나서부터는 나와 어머니는 마치 친구 같다. 물론 나와 우리 어머니보다 훨씬 더 친구같이 지내는 모녀가 많겠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런데 어제 2시간밖에 못 잔 여파로 저녁을 먹자 말자 잠이 들어서 여차저차 하다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머니께 전화드리는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쩜 이렇게도 사소한 것도 못해드릴까.
분명 오늘 하루도 어머니는 굉장히 속상하셨을 거다. 어쩌면 회사일 때문에 너무 바쁘셔서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침에 '딸밖에 없다'라는 짧은 문자가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머니께 잘못한 게 참 많긴 한가보다. 어머니에 대해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글을 써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
내일은 꼭 전화드려야지.
오늘 밤, 참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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