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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깔려 죽다. 본문

ME/Daily Life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깔려 죽다.

pencilk 2003. 11. 15. 01:43

문예사조사 레포트를 위해 무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비교 분석했다. 그저 하나하나의 책으로 읽을 때와 서로 비교하며 읽을 때와, 레포트를 쓸 때는 또 다르다; 나는 레포트를 쓰면서 굉장히 놀랐다;


사실 진짜 내 마음대로 분석했다. 쓰기 전에 써놓았던 개요도 다 무시하고 쓰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하다보니 '아하, 이렇구나' 싶어서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전에 읽으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들이다. 내가 써놓고도 놀랐고 교수님이 보면 엄청나게 어이없는 소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학점은 포기했다. 나는 국문과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그냥 학생일 뿐인데,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봤고 나름대로 열심히 분석도 해보았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나름대로 뿌듯하다.



오늘, 레포트를 끝낸 기쁨에 들떠 563에 들렀을 때 마침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수연 언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 책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한창 그 책을 읽고 공감하고 가슴에 와박히는 문장들에 감탄하고 슬퍼하고 또 다행스러워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오랜만에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전에는 잘 하지 않던 이야기들이었던 그 때의 시간들이, 이제는 그냥 그 땐 그랬어-라며 웃어 넘기는 이야기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피식 웃으면서 말하긴 했어도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코 끝이 찡해진다거나 나도 모르게 약간 목이 메인다거나 하는 증상은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그저 웃음만 나온다. 아마도 '그 때 난 어렸으니까'라고 인정하고 나서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긴 이야기를 썼듯이, 나 역시 잊지 않기 위해 이야기하고, 일기에 쓰고, 웃음 짓는다. 그 땐 그렇게 절실하도록 강렬했던 감정들도 언젠가는 모두 희미해져버릴 테니까.



자, 이제 남은 레포트를 써야지.
문학과 영화. 영화 프라하의 봄과 책의 비교 분석이다.
나는 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깔려죽으러 간다.

 



 
AllSunday   03/11/15
이상하게 나는 정말.. 하루키나 쿤데라는 읽어도 읽어도 모르겠더라. 분석글 쓰라고 하면 정말 못 쓸 것 같아. 그 책들은 재밌게 읽는 사람도 많은데, 난 솔직히 너무 어려워. 이해도 잘 못하겠고. 웽 ㅜ_ㅡ


loveheart
   03/11/15

나도 쿤데라 소설 읽고 독후감 쓴적 있음.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줄줄 써서 냈는데 학점은 좋았어. 흐흐. 그게 참 마음에 와 닿더라가. 배신함으로써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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