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
- Total
pencilk
Happy Together 春光乍洩 본문
우리 다시 시작하자.
춘광사설春光乍洩, 봄빛이 잠깐 새어나오다.
영어 제목 Happy Together.
그리고 포스터에 적혀있는 글귀는 A Story About Reunion.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다.
실제로도 영화는 "아휘,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보영의 대사로 시작한다.
그냥 시작하는 것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보영과 아휘는 라틴 아메리카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이과수 폭포에 가려다가 길을 잃고 만다. 교통이 발달해있어서 가는 길이 쉬울 뿐만 아니라 그 크기의 거대함으로 인해 몇 km 밖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이과수 폭포를 찾지 못하는 그들은 곧 희망을 잃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에 가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지만,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언젠가는..'하고 기대한다. 그것이 또 다시 그들에게 희망이 된다. 보영과 헤어졌지만 아휘는 폭포가 그려져 있는 스탠드를 버리지 않는다.
잠시 이과수 폭포를 보여줄 때를 제외하고는 흑백이던 영화가 "다시 시작하자"라는 보영의 말과 함께 칼라로 바뀐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고 다소 느릴 수밖에 없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자'며 돌아오는 보영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휘는 보영이 빨리 낫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아플 때는 자신에게 기대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영의 상처가 다 나으면서부터 아휘는 다시 그가 자신을 떠날지도 몰라 불안해해야 했다. 사랑하기에 매일 투닥거리면서 싸우고, 사랑하기에 집착한다. 헤어지면 그리워하면서 '다시 시작하자'라며 울지만, 다시 시작하면 또 다시 싸우고 집착한다. 다시 시작했지만 행복해지지 못하고, 다시 시작했지만 아휘는 또 다시 보영이 떠나는 것을 붙잡지 못한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대표하는 음악이다. 홍콩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고독해하면서 살아가는 그들 모두의 영혼을 위로하는.
영화 내내 두 사람이 정말 행복해보이는 장면은 이 탱고 씬 하나다. 하지만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졸라의 피날레는 지독하게 슬프다. 왕가위의 음악 선곡은 그의 모든 영화에서 탁월하게 드러나지만, 특히 이 영화는 그 어떤 대사보다도 음악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Happy Together에 있어 피아졸라의 음악은 배경음악 그 이상의 것이다. (그가 아르헨티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피아졸라를 들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다!)
왕가위 영화 중에 내가 Happy Together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영화들 중 가장 희망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적어도 3번씩은 봤지만, 특히 Happy Together는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진다.
세상의 끝에 가서 슬픔을 묻어주겠다는 장의 말에 녹음기를 가져다대보지만, 아휘가 녹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흐느낌 뿐이었다. 항상 둘이 함께 있는 모습만 상상했던 이과수 폭포 아래에 혼자 섰을 때 아휘는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 다시 홍콩으로 돌아간다. 폭포에서 그가 본 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보영의 여권과 폭포 스탠드를 남겨둔 채 홍콩으로 떠나는 아휘는 아마도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고.
그것은 보영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을,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던 장처럼 가족과의 관계도, 취직도, 그리고 사랑도, 모두 다 다시 시작하고 싶음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다시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피아졸라의 피날레와 함께 담요를 끌어안고 울던 보영의 모습이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가슴 쓰린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매번 웃지 못하고 울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이어리에 끄적여놓았던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