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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늦깍이 대학생들의 젊은 캠퍼스 생활 본문
"각 대학 늦깍이 신입생 '봇물'"
매년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날 때쯤이면 으레 볼 수 있는 기사가 있다. 늦깍이 수험생들의 대학 입학 소식이다. 늦은 나이에 수능시험을 보고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 대학에 합격했다는 점에서 자연히 그들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그들의 이야기는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직장에 다니다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입학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입학 소식을 접했지만, 정작 늦깍이 대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나이 어린 학생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그들의 대학 생활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도전했죠
98학번 박숙현(35·서울교대 국어교육과)씨는 방학이지만 매일 도서관에 간다. 졸업을 앞두고 공부할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한다. 5년 동안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8년 남짓한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범한 주부인 그가 대학 생활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기까지는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남편과 시누이도 이번에 대학원에 들어가서 가족들이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이다. "다음날이 제사인데 제가 레포트나 과제 때문에 장 좀 봐놓으라고 말하면 시누이들이 알아서 다 준비해줘요." 그는 오히려 며느리가 공부하는 데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시댁 식구들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슈퍼우먼은 없다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학교 다니기 힘들었을 거예요."
비록 신세대적인 감각은 조금 떨어져도 나이가 많은 것이 학교 생활에 불리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유리한 점이 훨씬 더 많았다. 점수에 맞춰 교대에 들어온 학생들이 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교대에 입학했기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적도 좋았다. "교수님들과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과제 하나를 해도 어떻게 해가야 좋아하실 지가 눈에 보여요. 그래서 조별 과제가 나오면 학생들이 저랑 같은 조가 되고 싶어하거나, 저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곤 한답니다."
졸업을 앞둔 올 3월이면 교단에 선다.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는 복지관에서 일할 때 아이들과 지내봐서 친해지는 방법까지 잘 안다며 자신 있게 웃었다.
가능성을 가진 이의 행복한 도전
늦깍이 00학번 오정택(42·서울대 치의예과)씨는 자신이 다시 대학에 들어간 이유를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 말한다. 성균관대 79학번이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SK 국제금융부에서 몇 년간 근무했던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서울대 치의예과라는 타이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의사가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진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사업을 했겠죠."
그는 어린 학생들보다는 자기처럼 늦게 대학에 온 학생들과 친하게 지낸다. 대부분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왔거나, 자신처럼 직장을 다니다 온 사람들이다. "나중에 그 친구들과 꼭 무슨 사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떤 가능성이든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나이 어린 학생들에 비해 아무래도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오정택씨는 그냥 치과의사만이 아닌, 다른 분야와의 연결을 통한 차별화 된 광역진료시스템을 개발하고 싶단다.
학생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오정택씨는 자신이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그는 오히려 요즘 학생들이 의외로 전통적인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조금은 실망했다고 말한다. "교수님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들을 학생들이 그대로 배우는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은 굉장히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아직도 대부분이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학생들이 오히려 '나이'를 의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부담 때문에 지난 2년간 공부에만 전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본과 과정부터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보인다. "직장 다니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졸업 후에 펼쳐질 '가능성'이 아내도 저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나이와 공부가 무슨 상관인가요?
"지난 대학 4년을 반추해 보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제 스스로 결정해서 왔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명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연수(가명·28)씨는 지난해 01학번으로 다시 의대에 들어갔다. 처음에 대학을 다녔을 때는 그저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강했다. 집에서도 취직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그다지 생각이 없었기에, 졸업할 만큼의 학점만 받아 졸업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후회가 많이 남았고, 다시 한번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의대에 왔다기보다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지난 대학 생활에 후회가 많이 남았던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는, "어쩌면 한 학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성적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 했으니까 아쉽지는 않다"며 의대생으로서의 1년 생활에 대해 만족해했다.
"그저 대학에 들어간 것뿐인데 사람들은 제 나이에만 호기심을 보여요. 나이는 공부와 상관 없는 거 아닌가요?" 20대 후반이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들에 비해 암기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의대에는 재수생이나 삼수생이 많아서 특별히 나이가 많다는 생각 없이 다 같이 어울려 지낸다.
결혼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나이가 찼다고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공부에 방해되니 졸업부터 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공부에 대한 열의가 담겨있었다.
뚜렷한 목표와 꿈을 가진 이들의 용기있는 도전
"저희 학교에 40살 아주머니 학생이 계시는데, 늘 공부하고 계세요. 항상 귀에는 일어 어학 테입을 듣고 다니고 손에는 단어장을 들고 있죠. 그 분은 일문과 전체 수석이라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 다닌답니다.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이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예린(가명·23)씨는 나이도 잊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그분을 보면서 그냥 대충 학교에서 시간 보내고 친구 만나러 다니는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 보통 대학생들과 다를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장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에 비해, 그들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들에게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감하게 도전한 늦깍이 대학생들이 남은 대학 생활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웹진 듀 2002년 2월호 기사
http://ewhadew.com/news/articleView.html?idxno=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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